운전자에서 의뢰인으로

AI가 건물을 운전하는 시대

「건물이 숨 쉬는 법」 시리즈 · EP2

AI가 건물을 운전하면 에너지가 얼마나 줄어드나? 구글 딥마인드의 데이터센터 실증에서 냉각 에너지를 약 40% 줄이고 전력효율지표(PUE)를 약 15% 개선했다. 다만 이 40%는 냉각 에너지에 한정된 값이며, 건물 전체 에너지가 그만큼 주는 것은 아니다.

건물에게 이렇게 말을 거는 날이 생각보다 멀지 않다. "내일 오후 회의실은 쾌적하게, 단 전기요금 피크 시간만은 피해줘." 지난 편에서 우리는 BEMS(빌딩에너지관리시스템)를 '건물에 세운 에너지 측정소'라고 불렀다. 강에 측정소를 세워 물을 지켰듯, 건물에 측정소를 세워 에너지를 지킨다고. 그런데 그 측정소가 요즘, 측정을 넘어 슬그머니 운전대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끝에서 사람의 자리도 함께 달라진다. 건물을 직접 '운전하던' 사람이, 건물에 목표만 '의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번 편은 그 전환의 한복판을 들여다본다.

루프의 두뇌가 바뀐다

규칙기반과 학습기반

BEMS는 본래 하나의 폐회로(closed loop)다. 센서로 재고(계측) → 데이터를 모으고(수집) → 어떻게 할지 정하고(판단) → 설비를 움직이고(제어) → 다시 잰다(재계측). 이 고리가 쉼 없이 돈다. 최신 제어 연구는 이 구조를 '인지 — 판단 — 행동'의 3단 피드백 루프로 정식화한다.[1]

핵심은 가운데의 '판단'이다. 지금까지 그 판단을 맡은 두뇌는 대부분 사람이 미리 짜 둔 규칙과 스케줄이었다. '아침 9시에 켜고 저녁 6시에 끈다', '실내가 28℃를 넘으면 냉방을 돌린다' 같은 식이다. 이 규칙들은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매일 아침 9시에 사람이 정확히 나타나는가? 어제의 날씨와 오늘의 날씨가 같은가? 어제 회의실이 꽉 찼다고 오늘도 그럴까? 규칙은 '평균'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건물 안의 삶은 매 순간 평균을 벗어난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루프가 바뀌는가'가 아니다. '루프의 두뇌가 무엇으로 바뀌는가'다. 정해진 규칙에서 스스로 학습하는 AI로 — 바로 그 교체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사람이 '이때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대신, AI가 '어떻게 하면 더 잘 됐는지'를 수천 번의 경험에서 스스로 익히는 방식으로.

AI가 사람보다 잘 운전한다 — 딥마인드의 증거

AI 에너지 절감

AI 빌딩 제어에서 가장 유명한 실증은 구글 딥마인드의 데이터센터 냉각 제어다(2016년 공개). 연구진은 수천 개 센서의 이력 데이터 — 온도·전력·펌프 속도·설정값 — 로 심층신경망 앙상블을 학습시켰다. 그러고는 5분마다 센서 데이터를 받아, 여러 냉방 조치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안전 제약을 넘지 않는 선에서 가장 효율적인 구성을 스스로 골라내게 했다.[2]

성과는 또렷했다. 냉각에 쓰는 에너지를 약 40% 줄였고, 데이터센터 전체의 전력효율지표(PUE, 총 전력 대비 IT 장비 실사용 전력 비율)를 약 15% 개선했다.[2]

다만 이 수치는 정확히 읽어야 한다. 약 40%는 '데이터센터의 냉각 에너지'에 한정된 값이다. 모든 건물의 전체 에너지가 40% 준다는 뜻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실험의 의미는 크다. 사람이 짠 규칙이 아니라 'AI가 학습한 정책'이 사람보다 더 잘 운전한다는 사실을, 대규모 실제 설비에서 처음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묵직한 역설도 숨어 있다. 그 똑똑한 두뇌가 돌아가는 데이터센터 자체가 거대한 전기 먹는 기계라는 점이다. AI가 한쪽에서 건물을 식히는 동안, 그 AI를 돌리는 또 다른 건물이 지구를 덥힌다. 우리가 기후 시리즈에서 살펴본 '2도'의 싸움이 바로 이 지점과 맞닿는다.

상용화의 현장 — AI BEMS는 어디까지 왔나

딥마인드의 실험은 단발로 끝나지 않았다. 캐나다의 한 AI 건물제어 스타트업은 자사 시스템을 기존 공조(HVAC) 설비에 연결해, 실제 상업 건물에서 HVAC 에너지를 약 25~29% 줄이는 파일럿 결과를 공개했다.[3] 초기 상용화 발표 자료에는 '총 에너지 비용 25~35% 절감'이라는 수치도 등장한다.[3]

그런데 이 숫자들은 읽는 방법이 있다. 25~29%는 특정 파일럿 건물들에서 실측된 값이고, 25~35%는 업체가 제시하는 일반적 기대치 범위다. 건물의 노후도, 기후, 사용 패턴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어느 한 건물의 실측치를 '모든 건물의 절감률'로 읽는 것은 무리다.

기업별로 접근법도 다르다. 강화학습(RL,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정책을 최적화하는 학습 방식)으로 제어 정책을 스스로 익히는 방식, 기계학습으로 건물 부하를 예측해 전력 피크를 사전에 낮추는 방식, 디지털트윈(Digital Twin, 물리 설비를 가상으로 복제해 시뮬레이션하는 기술)과 연동해 다차원 최적화를 구현하는 방식 등이 각자의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술의 방향은 수렴하고 있으나, '어떤 건물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는 여전히 현장마다 다르게 측정되고 있다.

결국 이 숫자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건물을 직접 제어하던 사람이 점점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AI가 채우고 있다는 것. 그 속도는 건물마다, 나라마다, 기술마다 다르다. 하지만 방향은 하나다.

운전자에서 의뢰인으로

2024년 이후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대규모 언어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을 BEMS의 두뇌로 올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림은 이렇다. 미래의 건물에서 인간은 '제어값을 일일이 입력하는 운전자'가 아니라, '목표를 말하는 의뢰인'이 된다.[1] 앞서 든 예처럼 '내일 오후 회의실은 쾌적하게, 단 전기요금 피크는 피해줘'라고 말하면,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냉방·조명·환기 같은 하위 시스템에 일을 위임해 실행한다.

다만 신중하게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런 연구의 상당수는 아직 동료심사(peer review)를 거치기 전의 공개본 단계다. 실험실이 보여 준 가능성이지, 모든 건물의 보편적 현실은 아직 아니다. 약속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정직하게 두고 보는 편이 좋다.

한국의 시계 — iBEEMS 연구단

이 흐름에 한국도 발을 들였다. 단국대학교가 총괄 주관하는 iBEEMS(자율운전 기반 지능형 건물 에너지·환경 통합관리시스템) 연구단은 산학연 23개 기관이 참여하는 국가 R&D 프로젝트다(2021년~). 세종대·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나라컨트롤·HDC LABS·한국건설기술연구원 등이 함께하며, 문현준 단장(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에너지빅데이터연구센터장)이 이끌고 있다.[4] 총사업비 271억 8,400만원으로, 에너지기술평가원 지원과제 중 최대 규모다.[4]

연구단은 2024년 12월, 정보통신표준화위원회 제106차 총회에서 iBEEMS 제1부(일반 요구사항) 단체표준을 채택했다.[4] 기존 BEMS를 넘어선 '자율운전 3.5단계' 기술 수준을 목표로 내건다.

이 연구단이 공개한 실증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단국대 진리관 등 특정 건물에서 진행한 실증에서 평균 냉방에너지 42.5% 감소, 실내 CO₂ 51.3% 개선, 열쾌적도 34.3% 개선라는 결과를 거뒀다.[4] 앞서 살펴본 딥마인드의 해외 실증(냉각 에너지 40% 절감), BrainBox AI의 북미 파일럿(HVAC 25~29% 절감)에 더해, 한국의 실제 건물에서도 실측으로 유사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결과다. 단, 이 수치는 특정 건물 실증 결과이며 모든 건물로 일반화할 수 없다.

관련 보도에는 'AI가 건물을 관리해 에너지를 40% 절감한다'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2023년 말 기준). 실증 성과와는 별개로, 이 40%는 상용화 보급 목표·기대치의 성격도 있다. 딥마인드의 수치가 이미 가동된 설비에서 측정된 결과라면, 보급 목표치의 40%는 '이루려는 것'이다. 같은 숫자라도 의미가 다르다. 실제 절감은 가동 뒤의 실측과 검증으로만 확인된다.

측정자의 역설

AI 빌딩 기사를 읽을수록 오히려 한 가지가 또렷해지는 것이 있다. 센서가 틀리면, AI도 틀린다. 아무리 똑똑한 두뇌라도 잘못 잰 데이터를 먹으면 잘못 운전한다. 그래서 자동화가 깊어질수록, 역설적으로 정직하게 재는 센서 하나, 제때 교정된 계측기 하나가 더 귀해진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측정은 덜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해진다' — 이것이 이 분야 전문가들이 일컫는 '측정자의 역설'이다.

연구자들이 꼽는 과제도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잘못 학습한 AI가 설비를 위험한 영역으로 몰지 않도록 하는 안전 보증(Safe RL), 자율운전 건물에서 사고가 났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하는 책임 소재, 그리고 'AI 덕분에 줄었다'를 누가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측정·검증(M&V)의 문제.[5] 화려한 자동화의 시대에도 신뢰의 토대는 여전히 '정직하게 재는 일'에 놓여 있다.

건물이 전 세계 최종에너지의 약 30%, 에너지 관련 온실가스 배출의 약 26%를 차지하는 지금[6], AI가 그 거대한 기계의 운전대를 점점 더 많이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럴수록, 계측이라는 오래된 기술은 조용히 더 중요한 자리에 앉는다. 강에 측정소를 세우고 갯벌에 관측을 두었듯이.

규칙에서 학습으로, 운전자에서 의뢰인으로

건물은 점점 더 알아서 숨 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것은 분명 설레는 진보다. 동시에, 그 진보의 토대에는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정직하게 재는 센서 하나가 더 귀해진다."

그런데 가장 똑똑한 건물이 새로 올라가는 바로 그 시간에, 가장 낡고 가장 많이 새는 집은 누가 돌보고 있을까. 기술의 최전선과 삶의 최전선은 같은 자리가 아니다. AI가 두뇌를 갈아 끼우는 동안, 단열재 한 장이 아쉬운 집들의 이야기 — '공짜로 줄이는 30%'와 건물의 기후정의로, 다음 편에서 이어 간다.

자주 묻는 질문 (FAQ)

딥마인드의 40% 절감은 무엇을 줄인 수치인가요?

약 40%는 데이터센터의 냉각 에너지에 한정된 값입니다. 모든 건물의 전체 에너지가 40%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실험의 의미는 AI가 학습한 정책이 사람이 짠 규칙보다 더 잘 운전한다는 사실을 대규모 실제 설비에서 처음 증명한 데 있습니다.

규칙 기반 제어와 AI 학습 제어는 어떻게 다른가요?

규칙 기반은 ‘아침 9시에 켜고 저녁 6시에 끈다’ 같은 정해진 스케줄로 움직입니다. 반면 AI는 과거 경험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됐는지를 스스로 익혀 판단합니다. 규칙은 평균을 위해 만들어지지만 건물 안의 삶은 매 순간 평균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도 AI 기반 BEMS 연구가 있나요?

단국대가 총괄하는 iBEEMS 연구단이 산학연 23개 기관과 함께 진행하며, 총사업비는 271억 8,400만원입니다. 단국대 진리관 등 특정 건물 실증에서 평균 냉방에너지 42.5% 감소, 실내 CO2 51.3% 개선, 열쾌적도 34.3% 개선 결과를 거뒀습니다. 다만 이는 특정 건물 실증치로 모든 건물에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운전자에서 의뢰인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미래의 건물에서 인간은 제어값을 일일이 입력하는 운전자가 아니라 목표를 말하는 의뢰인이 됩니다. ‘내일 회의실은 쾌적하게, 단 전기요금 피크는 피해줘’라고 말하면 AI가 스스로 계획을 세워 냉방·조명·환기에 일을 위임해 실행하는 방식입니다.

출처

[1] arXiv 2512.25055 — BEMS의 '인지–판단–행동' 3단 피드백 루프 정식화 및 LLM 에이전트 기반 빌딩 제어 연구 (동료심사 전 공개본, 인용 시 게재 상태 확인 필요)

[2] Google DeepMind 공식 블로그, "DeepMind AI Reduces Google Data Centre Cooling Bill by 40%" (2016) — 냉각 에너지 약 40% 절감 = 전체 PUE 약 15% 개선

https://deepmind.google/blog/deepmind-ai-reduces-google-data-centre-cooling-bill-by-40/

Google 공식 블로그:

https://blog.google/company-news/outreach-and-initiatives/environment/deepmind-ai-reduces-energy-used-for/

[3] BrainBox AI 공식 웹사이트·보도자료 — HVAC 에너지 약 25~29% 절감(GWL Realty Advisors 토론토 두 건물 파일럿 실측, 2020년); 총 에너지 비용 25~35% 절감(기대치 범위). https://brainboxai.com/en/solutions/ai-control / https://brainboxai.com/en/newsroom/brainbox-ai-pilot-achieves-25-29-energy-savings-in-two-gwl-realty-advisors-toronto-properties

[4] KHARN(칸) 「[인터뷰] 문현준 iBEEMS연구단 단장 및 1-1세부총괄(단국대 교수)」, 2025-01-11 — 단국대 총괄 주관·산학연 23개 기관·총사업비 271억 8,400만원·실증 성과(단국대 진리관 등 특정 건물 실증: 냉방에너지 42.5% 감소, CO₂ 51.3% 개선, 열쾌적 34.3% 개선). https://www.kharn.kr/news/article.html?no=26816

iBEEMS 제1부 단체표준 채택(2024.12.6, 정보통신표준화위원회 제106차 총회): 전기경제신문 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8559 · 한국BEMS협회 공지 http://www.bems.or.kr/bbs/board.php?bo_table=bems_news&wr_id=116 · KHARN https://www.kharn.kr/news/article.html?no=26728

※ 'iBEEMS 에너지 40% 절감'(보급 목표·기대치, 2023년 말 보도)은 딥마인드 실측 40%·실증 성과와 구분.

[5] LLM·강화학습 기반 자율운전 BEMS 연구(안전 보증 Safe RL·책임 소재·측정검증 M&V 과제) — arXiv 공개본(동료심사 전, 2024~2025) 및 「AGI시대의 BEMS 진화전망」 조사자료집 §5.1. (인용 시 게재 상태 확인 필요)

[6] IEA — Buildings (Energy System): 건물이 전 세계 최종에너지의 약 30%, 에너지 관련 배출의 약 26%를 차지. https://www.iea.org/energy-system/buildings

사진: Alejandro Luengo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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