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의 값

값을 매길 수 없다던 땅에, 청구서를 써보았다

GaiaBeacon 「갯벌, 지구의 콩팥」 시리즈 · EP3

갯벌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되나? 해양수산부는 한국 갯벌의 생태계서비스 가치를 연 17조 8,121억 원으로 추산했다(2020년 평가 기준). 이는 2013년 첫 평가 때보다 약 15조 원 늘어난 값으로, 측정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커지는 최소한의 값이다.

갯벌은 오랫동안 '값이 없는 땅'이었다. 사고팔리지 않으니 장부에는 0원으로 적혔다. 0원이니 메워도 손해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값도 모르면서 값어치 있는 것들을 밀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물었다. 정말 0원인가. 갯벌이 우리 대신 해주는 일에 청구서를 써보면, 도대체 얼마가 나올까. 숫자가 나왔다. 그리고 그 숫자는, 사람을 멈춰 세웠다. 이 시리즈의 첫 편에서 갯벌을 '쓸모없는 땅'으로 보던 시대의 인식을 살펴봤다면, 이번 편에서는 그 인식이 실제로 어떤 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했는지를 숫자로 들여다본다.

'0원'의 함정

시장 가격이 없다는 것과 가치가 없다는 것은 다르다.

공기에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다고 공짜가 아니듯, 갯벌이 묵묵히 해온 정화·방재·탄소 흡수·생명 부양에는 그저 시장이 값을 매기지 않았을 뿐이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시장 실패'라고 부른다. 값을 치르지 않고도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그 혜택을 제공하는 존재가 사라져도 아무도 회계 장부에 손실을 기록하지 않는다.

갯벌이 정확히 그런 존재였다. 조개를 캐는 어민에게, 육지 오염물을 걸러주는 갈대숲에게, 해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갯벌 모래밭에게 —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값을 내지 않았다. 대신 무한정 쓸 수 있다고 착각했다.

생태계서비스(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의 경제적 가치)라는 개념이 학계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마침내 사람들은 그 '안 매긴 값'을 계산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계산 결과는, 착각이 얼마나 컸는지를 한눈에 보여주었다.

해마다 17조 8천억, 그것도 최소치

갯벌 경제 가치

해양수산부가 한국 갯벌의 생태계서비스 가치를 따져보니 연 17조 8,121억 원이었다(2020년 평가 기준). 조절서비스 16조 3,786억 원에 문화서비스 1조 4,335억 원을 더한 값이다.[1] 조절서비스에는 탄소 흡수, 수질 정화, 홍수·해일 완충 등이 포함된다. 우리가 돈을 내지 않고 매년 누려온 서비스의 합계가 이 숫자다.

더 놀라운 건 그 변화다. 2013년 첫 평가 때보다 약 15조 원 늘어났다.[1] 갯벌이 갑자기 더 부지런해진 게 아니다. 우리가 그제야 탄소 흡수 같은 가치를 '잴 줄 알게' 된 것이다. 측정 기술과 방법론이 정교해질수록, 숫자는 커졌다. 그 말은 곧, 지금의 17조 8천억도 아직 다 세지 못한 값이라는 뜻이다.

17조 8천억은 천장이 아니라 바닥이다. 잴수록 더 커지는, 최소한의 값.

진실은 범위 사이에 있다

정직하게 말하자. 갯벌의 값은 하나의 숫자로 못 박을 수 없다. 측정 방법과 지역, 계절에 따라 폭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위로 말하는 것이 옳다.

가장 단단한 항목인 탄소 하나만 떼어보자. 전 세계 갯벌은 해마다 최대 약 2,49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영구히 묻는다. 세계 123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갯벌의 연평균 탄소 매장률은 1㎡당 129.8 gC로 확인되었다.[2] 갯벌 바닥의 진흙은 산소가 거의 없어 유기물이 분해되지 않고 쌓인다.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탄소가 지층 깊숙이 봉인되는 원리다.

우리나라 갯벌만 따로 계산해도, 해마다 최대 약 224만 톤이다. 보수적으로 가장 낮춰 잡으면 약 29만 톤이다.[3] 이 차이가 크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불확실성이 아니라 측정 조건의 차이다. 측정 장소, 계절, 방법론에 따라 범위가 달라질 뿐, 갯벌이 탄소를 묻는다는 사실 자체는 흔들리지 않는다. 단일 대표값이 필요한 경우, 흡수량 기준으로는 약 26만 톤 CO₂/년(서울대 김종성팀, STOTEN 2021)이 사용된다. 위의 29만~224만 톤은 탄소 침적(매장)량 기준으로 측정 정의가 다르다.[3]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러나 그 '어딘가'의 가장 낮은 값조차, 결코 0이 아니다.

탄소는 갯벌이 하는 일의 한 조각일 뿐이다. 여기에 정화·어업·방재·관광까지 더한 것이 바로 앞의 '연 17조 8천억'이다. 어느 잣대로 재든, 갯벌은 메워서 없앨 만큼 값싼 땅이 결코 아니었다.

숲보다 갯벌?

숲 대비 탄소흡수

흔히 숲을 최고의 탄소 흡수원으로 떠올린다. 절반만 맞다.

숲은 낮에 광합성으로 탄소를 빨아들이지만, 밤에는 호흡으로 상당량을 도로 내뱉는다. 다 자란 숲은 흡수와 배출이 거의 균형을 이루기 시작한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화재가 잦아지면서, 숲이 배출원으로 뒤집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로 아마존의 탄소흡수원은 수십 년에 걸쳐 뚜렷하게 약화되었으며, 2030년경이면 흡수력이 거의 0에 가까워질 것으로 전망된다.[4]

갯벌은 다르다. 갯벌 바닥에 묻힌 탄소는 산소가 없어 분해되지 않는다. 불도 나지 않는다. 한번 봉인된 탄소는 수천 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머문다. 단위면적당 '땅에 영구히 묻는 양'으로 보면, 맹그로브·갯벌 같은 해안 습지의 연간 영구 매장률은 열대림 토양의 약 40배에 이른다.[5]

오해는 말자. 숲의 진짜 힘은 줄기와 뿌리에 이미 쌓아둔 거대한 '저장고'에 있고, 갯벌의 힘은 느리지만 꾸준히 새로 쌓아가는 '적금'에 있다. 둘 다 귀하다. 어느 하나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다만 '해마다 새로 묻는 능력'에서는, 갯벌이 숲을 앞선다.

보전이 수익이 되는 시대

더 흥미로운 건, 이 값이 추상이 아니라 실제 '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24년 COP29(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파리협정 6조가 최종 타결되며 나라끼리 탄소 크레딧을 사고팔 길이 열렸다.[6] 그동안 쌓아왔던 규칙 공백을 메운 결정이었다. 탄소 감축을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크레딧으로 팔 수 있게 됐고, 이는 갯벌 같은 자연 생태계에도 직접적인 경제 논리를 부여했다.

2025년 COP30(브라질 벨렘)에서는 브라질 주도로 열대림을 지키는 나라에 면적당 돈을 주는 기금(TFFF, 열대림 영구기금)이 출범했다.[6] COP30 기준으로 약 67억 달러가 공약되었다. 보존이 곧 수익이 되는 구조가 국제 무대에서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갯벌·습지의 블루카본(갯벌·연안 생태계가 흡수·저장하는 탄소)도 이미 국제 시장에서 크레딧으로 거래된다. 2025년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 81개 블루카본 프로젝트가 존재하며, 이 중 10개가 실제 크레딧을 발행하고 있다.[7] 검증 방법론으로는 Verra VM0033(갯벌·잘피 복원 방법론)이 널리 쓰인다.[7]

넓은 갯벌을 가진 한국은, 갯벌을 지키는 일이 곧 '탄소 자산'이 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단,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갯벌은 현재 한국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에 공식적으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2027년 IPCC 방법론 발표 이후 정식 편입이 전망된다. 시장 현황 수치(81개 프로젝트, 10개 발행 중)는 2025년 10월 기준이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향후 달라질 수 있다.[7] 에버그린 정보가 아닌 시점 정보임을 독자도 함께 인지해야 한다.

숫자를 읽는 사람의 자리

측정 현장의 데이터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데이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측정해야 보이고, 보여야 설득할 수 있다. '소중하다'는 말보다 '연 17조 8천억'이라는 숫자가 사람을 멈춰 세운다.

하지만 동시에, 값을 매기는 것이 양날의 칼임을 알아야 한다. 값을 매기는 순간, 누군가는 '그만큼 돈을 내고 메우면 되지 않나' 물을 수도 있다. 경제적 논리로 자연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때로 경제적 논리로 자연을 파괴하는 데 악용된다. 측정은 도구다. 그 도구를 누가, 무엇을 위해 쓰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분명히 해둔다. 갯벌에 값을 매기는 것은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다. 이 가격표는 영수증이 아니라 경고장이다. 갯벌을 잃으면 이만큼의 손실이 생긴다는 고지서이지, 이만큼 내면 없애도 된다는 허가증이 아니다.

연결되어 있었다

갯벌의 값은, 우리가 다 세기도 전에 이미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었다. 그 값을 끝까지 정확히 셀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셀 수 없다는 것은 '대충 해도 된다'가 아니라, '함부로 손대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이 가격표는 갯벌과 인간이 맺어온 조용한 계약서다. 우리는 그 계약서를 읽지도 않은 채 수십 년을 살아왔다. 이제야 겨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값을 다 매길 수 없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 남김없이, 최대한 지키는 것.

가장 낮춰 잡은 값조차 해마다 수십조라면, 우리가 할 일은 이미 분명하다.

자주 묻는 질문 (FAQ)

갯벌이 0원으로 여겨졌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장이 갯벌의 정화·방재·탄소 흡수·생명 부양에 값을 매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시장 실패라 부르며, 값을 치르지 않고도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그 존재가 사라져도 아무도 손실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갯벌의 생태계서비스 가치는 얼마인가요?

해양수산부 평가에 따르면 연 17조 8,121억 원입니다(2020년 평가 기준). 조절서비스 16조 3,786억 원에 문화서비스 1조 4,335억 원을 더한 값이며, 2013년 첫 평가보다 약 15조 원 늘어났습니다.

갯벌은 숲보다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하나요?

해마다 새로 묻는 능력에서는 갯벌이 숲을 앞섭니다. 단위면적당 영구 매장률로 보면 맹그로브·갯벌 같은 해안 습지는 열대림 토양의 약 40배에 이르며, 갯벌 바닥에 묻힌 탄소는 산소가 없어 분해되지 않고 수천 년간 봉인됩니다.

갯벌의 탄소가 실제 돈이 되나요?

네, 2024년 COP29에서 파리협정 6조가 타결되며 나라끼리 탄소 크레딧을 사고팔 길이 열렸습니다. 2025년 10월 기준 전 세계에 81개 블루카본 프로젝트가 존재하며 이 중 10개가 실제 크레딧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출처

[1] 해양수산부 공식 보도자료 — 우리나라 갯벌 생태계서비스 가치 연 17조 8,121억 원(2020년 평가 기준). 조절서비스 16조 3,786억 + 문화서비스 1조 4,335억.

[2] Murray et al. 2022, Frontiers in Marine Science — "Tidal Flats as a Significant Carbon Reservoir in Global Coastal Ecosystems". 전 세계 갯벌 연 최대 약 6.8 TgC(≈2,490만 톤 CO₂) 매장; 세계 123개 지점 평균 129.8 gC m⁻² yr⁻¹.

[3] 김종성 연구팀 2021,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STOTEN) — 한국 갯벌 탄소 침적률 0.08~0.61 TgC/yr(CO₂ 환산 약 29만~224만 톤); 흡수량 기준 대표값 약 26만 톤 CO₂/년.

[4] Hubau et al. 2020, Nature — 아마존 탄소흡수원 장기 약화; 2030년경 흡수력 거의 0 전망.

[5] McLeod et al. 2011, Frontiers in Ecology and the Environment — "A blueprint for blue carbon". 맹그로브 226 gC/m²/yr·염습지 218 gC/m²/yr vs 열대림 토양 영구매장 ≤5 gC/m²/yr → 약 40배 차이.

[6] COP29(2024, 바쿠) 파리협정 6조 최종 타결; COP30(2025, 벨렘) TFFF(열대림 영구기금) 출범 — 브라질·인도네시아·노르웨이·프랑스 등 주도, COP30 기준 공약액 약 67억 달러.

[7] Verra VM0033(갯벌·잘피 복원 블루카본 방법론) 및 npj Ocean Sustainability 2025 — 블루카본 프로젝트 전 세계 81개·크레딧 발행 10개(2025년 10월 기준).

사진: Daniel Bernard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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