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일생 — 내 컵 속의 물이, 공룡을 만났다고?

사진: Lorenzo Messina / Pexels

같은 물이 수십억 년째 돈다 — 산수로 따라가 본 물 한 방울의 일생

지구의 물은 새로 생기지도,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수십억 년째 똑같은 물이 바다→하늘→비→강→바다로 돌 뿐이죠. 그래서 우리가 마실 수 있는 강물은 지구 전체 물의 0.0002%에 불과하고, 하늘의 물은 9일마다 갈리며, 바닷물은 약 3,000년에 한 바퀴를 돕니다. 결국 오늘 마신 물 한 모금은, 공룡도 마셨던 바로 그 물입니다.

질문 하나. 오늘 아침에 마신 물 한 모금 — 이거, 처음 마셔보는 물이 맞을까요?

…아쉽지만, 틀렸어요. 그 물은 공룡도 마셨고, 클레오파트라도 마셨고, 어쩌면 당신의 100대 할머니도 마셨던 물입니다. 좀 으스스한가요? 그런데 이건 괴담이 아니라 과학이에요. 지구의 물은 새로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수십억 년째, 똑같은 물이 돌고 또 돌 뿐이에요 — 바다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비로, 비에서 강으로, 강에서 다시 바다로. 오늘은 이 물 한 방울의 기막힌 ‘일생’을, 물의 입장이 되어 따라가 봅니다. 준비물은 호기심 하나면 충분해요.

1. 지구에 물이 얼마나 ‘쓸 만하게’ 있을까?

첫 번째 퀴즈 — 지구에 물이 그렇게 많다는데, 우리가 당장 떠 마실 수 있는 ‘강물’은 지구 전체 물의 몇 퍼센트일까요? 1%? 0.1%?

정답은 0.0002%. 네, 소수점 아래에 0이 세 개나 붙어요. 지구 전체 물은 약 13억 8,600만 km³ — 상상도 안 되는 양이죠. 그런데 그중 약 97%(정확히는 96.5%)는 짜디짠 바다예요. 마실 수 있는 민물은 2.5%뿐인데, 그마저도 대부분 빙하로 꽝꽝 얼어 있거나 땅속 깊이 숨어 있어요.[1] 우리가 매일 보는 비·강·구름은, 알고 보면 지구라는 거대한 물탱크의 수면에 살짝 뜬 얇은 막 정도예요.

물이 있는 곳 전체 물에서 차지하는 비율
바다(짠물) 약 97% (96.5%)
민물 전체 약 2.5% (대부분 빙하·지하수)
강물 약 0.0002%
공기 중 수증기 약 0.001%

그러니 “지구는 물의 행성”이라는 말, 절반만 맞아요. 정확히는 ‘마시기 힘든 물의 행성’이죠. 그런데 이 인색해 보이는 물이, 사실은 한순간도 가만있질 않아요. 다음 장면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거예요.

지구의 물 분포 — 마실 강물은 0.0002%

2. 지구는 매일, 바다를 통째로 하늘에 퍼올린다

두 번째 퀴즈 — 지구가 하루 동안 하늘로 끌어올리는 물의 양은 얼마일까요?

정답은 약 1,400 km³. 무게로 치면 약 1조 4천억 톤이에요. 그것도 ‘매일’.[2][3] 햇빛이 바다와 땅을 데우면 물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한 해로 모으면 약 505,000 km³나 됩니다. 숫자가 너무 커서 감이 안 오죠?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하늘에 떠 있는 물(수증기)은 전부 합쳐 약 12,900 km³뿐이에요. 그런데 하루에 1,400 km³씩 새로 올라오니, 단 9일이면 하늘의 물이 통째로 새 물로 갈려요.[1][3] 즉 하늘은 9일마다 물을 갈아주는 거대한 어항인 셈이에요. 1년이면 무려 40번. 그래서 어제 태평양에서 증발한 물이, 다음 주 서울 하늘의 구름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거죠.

3. 그럼 바다는? 몇 년에 한 번 ‘다’ 증발할까

세 번째 퀴즈 — 지구 바닷물 ‘전체’가 증발해서 한 바퀴 다 갈리는 데는 몇 년이 걸릴까요?

이건 의외로 초등학교 나눗셈으로 풀려요. 바닷물 전체(약 13억 3,800만 km³)를, 바다에서 해마다 증발하는 양(약 43만 4천 km³)으로 나누면 돼요. 계산기를 두드리면 —

1,338,000,000 ÷ 434,000 ≈ 약 3,080년

약 3,000년에 한 번! 그러니까 지금 바다에 있는 물 한 컵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오는 ‘평균 한 바퀴’가 3천 년쯤 걸린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여기서 진짜 반전 — 이 막무가내 나눗셈이, USGS가 정식으로 발표한 ‘바다 체류시간 약 3,100년’과 거의 똑같아요.[1][4] 알고 보면 과학자들이 말하는 ‘체류시간’이라는 게 바로 이 나눗셈이거든요. 우리가 방금 과학자 흉내를 제대로 낸 거예요.

  • 바닷물이 지각 밑(맨틀)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건 100만 년 단위의 아주 느린 흐름이라 이 계산엔 영향이 없어요.
  • 증발량을 조금 다르게(약 449,500 km³) 보는 자료도 있어, 폭을 두면 ‘약 3,000년’이 안전합니다.
하늘은 9일, 바다는 약 3천 년

4. 물의 일생을 ‘1년짜리 영화’로 줄이면

자, 이제 재미있는 상상을 해볼게요. 바다 한 바퀴(약 3,000년)를 영화 1년으로 ‘빨리 감기’ 한다고 쳐요. 그러면 물방울이 각 장소에 머무는 시간이 이렇게 줄어들어요(빙하는 뺐어요 — 빙하는 압축해도 너무 길어서 1년짜리 영화를 통째로 깨버리거든요. 그건 따로 ‘얼음의 시계’ 편에서 만나요).

  • 바다 — 약 1년 (사실상 영화 내내 출연)
  • 지하수 — 약 37일
  • 호수·댐 — 약 2일
  • 강 — 약 8~44분
  • 하늘(수증기) — 단 4~5분.[1][4]

“우리가 매일 올려다보는 구름과 비는, 1년짜리 물의 영화에서 단 몇 분짜리 ‘카메오’다.”

놀랍지 않나요? 인생 거의 전부를 바다에서 보내는 물방울에게, 하늘 여행은 4분짜리 짧은 외출인 셈이에요. (이 ‘영화 시간표’는 정확한 측정값이 아니라, 큰 그림을 느끼기 위한 비유예요. 지하수·호수는 장소마다 머무는 시간이 크게 달라요.) 게다가 깨알 반전 하나 — 강은 부피가 하늘보다 훨씬 작은데도 머무는 시간은 더 길어요. 흘러가야 할 거리가 멀어서 그래요. 작아도 부지런한 게 강이죠.

물의 일생을 1년 영화로 — 머무는 시간

5. 자, 그래서 — 공룡과 만나려면 몇 바퀴?

이제 맨 처음 던진 ‘공룡 이야기’의 답을 맞춰볼 차례예요. 비조류 공룡이 지구에서 사라진 건 약 6,600만 년 전. 바다 한 바퀴를 3,080년으로 잡고 나눠보면 —

66,000,000 ÷ 3,080 ≈ 약 2만 1,000번

공룡 시대의 물은 지금까지 약 2만 번이나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온 셈이에요. 게다가 물 분자 자체는 수십억 년 묵었으니, 같은 물이 공룡의 목을 적시고, 빙하기에 얼었다 녹고, 또 어느 로마인의 포도주에 섞였다가, 오늘 아침 당신의 컵에 담긴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마신 물이 공룡을 거쳤다’는 건 — 농담이 아니라, 산수입니다.

마치며 — 물에는 기억이 있다

지구의 물은 거의 새로 생기지도, 사라지지도 않아요. 아주 가끔 운석이 물을 실어 오기도 하고, 물이 쪼개져 수소가 우주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 지구 나이에 비하면 그 양은 찻숟갈 수준이에요. 그러니 사실상 같은 물이 수십억 년째 자리만 옮기며 돌고 있는 셈이죠. 그 말은 곧, 이 물이 지구의 거의 모든 시간을 통과해 왔다는 뜻이에요.

“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물에는, 지구의 기억이 담겨 있다.”

오늘 우리는 물의 ‘일생 전체’를 멀리서 내려다봤어요. 다음 편에서는 줌을 확 당겨서, 물이 가장 짧게 머무는 곳 — 단 9일짜리 외출, ‘하늘’로 올라가 봅니다. 거기엔 우리가 모르는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 오늘 물 한 잔 마실 때, 잠깐 생각해 보세요. 이 물은, 그동안 어디어디를 다녀왔을까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 지구의 물은 정말 새로 생기지 않나요?

A. 사실상 그렇습니다. 운석이 약간의 물을 실어 오거나 물 분자가 쪼개져 수소가 우주로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지구 나이에 비하면 무시할 만한 양이에요. 그래서 같은 물이 수십억 년째 자리만 옮기며 순환합니다.

Q. 우리가 마실 수 있는 강물은 지구 물의 몇 %인가요?

A. 약 0.0002%입니다. 지구 전체 물(약 13억 8,600만 km³)의 약 97%는 바다(짠물), 민물은 2.5%인데 그마저 대부분 빙하·지하수예요. 강물은 그중에서도 아주 얇은 막에 불과합니다.

Q. 바닷물은 한 바퀴 도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A. 약 3,000년입니다. 바닷물 전체를 해마다 증발하는 양으로 나누면 약 3,080년이 나오는데, 이는 USGS가 발표한 ‘바다 체류시간 약 3,100년’과 거의 일치합니다.

결론 — 같은 물을, 다음 사람에게

물은 새로 만들 수 없고 사실상 사라지지도 않아요. 우리가 쓰는 물은 모두 ‘빌려 쓰는 물’이고, 다음 사람에게 건네줄 물이기도 하죠. 그 사실을 한 번 떠올리는 것 — 그게 물을 아끼는 가장 단순한 첫걸음이에요. 다음 편 「하늘의 강」에서, 가장 짧게 머무는 물이 어떻게 가장 바쁜 물인지 만나요.


▶ 함께 읽기 – [물이야기 ②] 하늘의 강 — 보이지 않는 강이 머리 위를 흐른다 – [물이야기 ④] 얼음의 시계 — 빙하가 멈춰 가는 시계가 된 이유 – [물의 경이] 시리즈 — 물 분자의 마법, 4도의 비밀(물의 과학적 경이)

참고 자료 – [1] USGS, “How Much Water Is There on Earth?” — 총량·분포·바다 체류시간 https://www.usgs.gov/water-science-school/science/how-much-water-there-earth – [2] USGS, “Water Pools and Fluxes Data Tables” — 연간 증발/강수 유량 https://www.usgs.gov/water-science-school/science/water-pools-and-fluxes-data-tables – [3] UCAR Center for Science Education, “The Water Cycle” — 연 약 505,000 km³·대기 연 40회 교체 https://scied.ucar.edu/learning-zone/how-weather-works/water-cycle – [4] NOAA Ocean Service, “The Global Conveyor Belt” — 심해 대순환 약 1,000~2,000년 https://oceanservice.noaa.gov/education/tutorial_currents/05conveyor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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