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저금통 — 발밑에 잠든 지하수, 그리고 그 통장을 당겨 쓰는 우리

사진: Faruqkhan1990 / Pexels

마실 물의 대부분은 땅속에 있다 — 그런데 그 94%는 다시 채워지지 않는 ‘옛날 돈’

빙하를 빼면,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의 대부분은 강·호수가 아니라 발밑 지하수입니다. 그런데 그중 약 94%는 수천~수만 년 전 고인 ‘화석 지하수’로, 한 번 퍼내면 사실상 다시 차지 않아요. 너무 빨리 퍼 쓰면 자카르타·멕시코시티처럼 도시가 가라앉고 곡창지대가 마릅니다. 다만 2024년 네이처 연구는 분명히 말합니다 — ‘지하수 고갈은 필연이 아니다.’

지난 편 ‘빙하’가 눈에 보이는 위기였다면, 오늘 주인공은 정반대예요.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매일 쓰고 있는 물.

바로 발밑, 땅속에 잠든 ‘지하수’예요. 우물물, 약수, 생수의 상당수가 여기서 나오죠. 그런데 이 물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정체와, 잘 모르는 위기가 숨어 있어요. 오늘은 땅을 파고 내려가, 인류가 조용히 ‘당겨 쓰고 있는’ 거대한 저금통을 들여다봅니다.

1. 마실 수 있는 물의 대부분은, 발밑에 숨어 있다

첫 번째 퀴즈 — 빙하를 빼고,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민물. 이 중 ‘강과 호수’에 있는 물은 몇 퍼센트일까요?

정답은 아주 적어요 — 강·호수는 몇 %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약 96~97%)은 전부 땅속 지하수예요.[1] 우리가 ‘물’ 하면 떠올리는 강·호수는, 사실 마실 수 있는 물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에요. 진짜 대부분은 흙과 모래, 바위 틈에 스며든 채 보이지 않게 잠들어 있죠. 지구가 인류에게 준 가장 큰 ‘민물 저금통’은, 강이 아니라 땅속이었던 거예요.

“빙하를 빼면, 마실 수 있는 물의 대부분은 —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수다.”

(잠깐, EP1에서 ‘바다가 97%’라고 했던 것 기억나죠? 헷갈리기 쉬운데, 그건 ‘지구 전체 물’ 기준이고 지금 이 97%는 ‘빙하를 뺀 마실 물’ 기준이에요. 같은 숫자지만 재는 대상이 완전히 달라요.)

마실 물의 대부분은 지하수

2. 그런데, 그 저금통의 94%는 ‘옛날 돈’이다

두 번째 퀴즈 — 그 많은 지하수, 비가 오면 금방금방 다시 채워질까요?

아쉽게도 아니에요. 과학자 글리슨 등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땅속 지하수 가운데 50년 안에 다시 채워지는 ‘현대 지하수’는 약 6%뿐이에요. 나머지 약 94%는 수천~수만 년 전, 지금보다 훨씬 비가 많이 오던 시절에 고인 ‘화석 지하수’예요.[1] 한 번 퍼내면 사실상 다시 차지 않는 물이라는 뜻이죠. 비유하자면 — 우리 통장엔 매달 들어오는 ‘월급(현대 지하수)’은 쥐꼬리고, 대부분은 조상님이 물려준 ‘옛날 돈(화석 지하수)’이에요. 그걸 헐어 쓰고 있는 거죠. 흥미로운 건, 이 땅속 저금통이 줄고 있다는 사실을 위성과 모델로 ‘재서’ 비로소 알아챘다는 점이에요 — 여기서도 ‘재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예요. 한 추정은 전 지구에서 해마다 약 304 km³씩 줄어든다고 봐요(Bierkens & Wada, 2019, 2010년 기준).[2]

“지하수는 ‘쓰면 끝나는 저금통’이다. 우리는 지금, 미래세대의 통장을 당겨 쓰고 있다.”

지하수의 94%는 화석 지하수

3. 그래서 — 도시가 가라앉는다

통장을 너무 빨리 헐면 어떻게 될까요? 놀랍게도, 땅이 꺼져요. 땅속 물을 너무 많이 퍼내면 그 빈자리만큼 흙이 내려앉거든요(지반 침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상수도가 부족해 시민들이 우물을 마구 파댔고, 그 결과 북부가 해마다 최대 수십 cm씩 가라앉아 일부 지역은 이미 해수면 아래로 내려갔어요. 결국 인도네시아는 ‘가라앉는 수도’를 포기하고 수도를 누산타라로 옮기기로 했어요.[3] 멕시코시티는 식수의 약 70%를 땅속에서 끌어 쓰다가 해마다 최대 50cm씩 내려앉고 있고요.[3] 우리나라 도시 곳곳에서 ‘싱크홀’이 생기는 데도, 노후 상하수관과 함께 지하수위 변화가 한몫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 자카르타 ‘2050년 상당 부분 침수’ 같은 수치는 모델 기반 ‘전망’이에요. 침하의 원인은 지하수 과다 취수가 크지만, 지역·연구마다 폭이 있어요.
도시가 가라앉는다

4. 곡창지대의 ‘마지막 물’ — 그래서 몇 년 남았나?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전 세계 지하수의 약 70%는 ‘농사’에 쓰여요(널리 인용되는 추정치예요). 미국의 거대한 곡창지대를 받치는 오갈랄라 대수층은 일부 지역이 이미 말라붙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1980년대에 사막에서 밀 농사를 짓겠다며 화석 지하수를 퍼 썼다가, 그 물의 상당 부분(약 3분의 2)을 소진하고 2016년 자국 밀 생산을 접었어요.[4] 그럼 자연스럽게 궁금해지죠 — “이대로면 몇 년 뒤에 다 고갈돼요?”

정직하게 답할게요. ‘전 지구 지하수가 X년 뒤 바닥난다’는 단일 숫자는 과학적으로 성립하지 않아요. 지하수는 한 통에 담긴 게 아니라 지역마다 따로 있고, 채워지는 속도도 제각각이거든요. 하지만 ‘지역별 시한’은 분명히 존재해요 — 어떤 곳은 머지않아 우물 대부분이 마르고, 어떤 화석 대수층은 앞으로 수십 년이면 끝이에요.[2][4] 한마디로, 지구 전체의 마감일은 없지만 — 어떤 지역은 이미 마감일을 지났어요.

5. 그러나 — 되돌릴 수 있다

여기서 끝났다면 너무 우울하죠. 다행히 2024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대규모 연구(전 세계 약 1,700개 대수층 분석)는 분명히 말해요 — ‘지하수 고갈은 필연이 아니다.’ 실제로 세계 최악의 고갈 지역으로 꼽히던 중국 북부 평원은, 빗물과 강물을 일부러 땅속으로 되돌려 넣는 방법으로 2020년부터 지하수위가 회복돼 2024년엔 20년 전 수준을 넘어섰어요.[5] 비운 통장도,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거예요.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지하수 고갈의 고통은 평등하지 않아요. 자카르타에서 가장 먼저 우물에 매달린 사람들은, 수돗물이 닿지 않는 가난한 동네 주민들이었어요. 화석 지하수를 당겨 쓴다는 건 — 사실상 미래세대의 물값을 앞당겨 쓰는 일이기도 하고요. ‘보이지 않는 물’의 위기는, 늘 ‘가장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먼저 덮쳐요.

마치며 — 통장을 물려주는 마음으로

지하수는 지구가 수만 년에 걸쳐 모아준 저금통이에요. 보이지 않기에 줄어드는 게 안 보이고, 그래서 더 함부로 헐기 쉽죠. 하지만 통장은 비우라고 있는 게 아니라, 잘 지켜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라고 있는 거예요. 다행히 우리는 ‘채우는 법’도 이미 알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다고 무한하지 않다. 땅속 저금통은, 물려받은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자, 땅 위·땅속을 다 돌아본 물은 이제 마지막이자 가장 큰 집 — 바다로 갑니다. 그런데 그 바다가, 우리가 뿜은 이산화탄소를 대신 삼키느라 ‘체질’이 변하고 있어요. 다음 편 「바다가 변한다」에서, 신맛이 짙어지고 높이가 오르는 바다 — 그리고 ‘북극 얼음’의 진짜 이야기를 만나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 마실 수 있는 물은 대부분 강과 호수에 있나요?

A. 아닙니다. 빙하를 빼면, 마실 수 있는 민물의 대부분(약 96~97%)은 땅속 지하수입니다. 강과 호수에 있는 물은 그중 아주 작은 일부예요.

Q. 지하수는 비가 오면 금방 다시 채워지나요?

A. 대부분은 아닙니다. 50년 안에 다시 채워지는 ‘현대 지하수’는 약 6%뿐이고, 약 94%는 수천~수만 년 전 고인 ‘화석 지하수’예요(Gleeson 2016). 한 번 퍼내면 사실상 다시 차지 않습니다.

Q. 지하수를 너무 많이 쓰면 어떻게 되나요?

A. 땅이 가라앉습니다(지반 침하). 자카르타는 일부가 이미 해수면 아래로 내려가 수도를 옮기기로 했고, 멕시코시티도 해마다 최대 50cm씩 가라앉고 있어요. 다만 빗물을 땅속으로 되돌리는 방법으로 회복한 사례(중국 북부 평원)도 있습니다.

결론 — 비운 통장도 다시 채울 수 있다

지하수는 수만 년에 걸쳐 모인 ‘물려받은 통장’이에요. 너무 빨리 헐면 도시가 가라앉고 곡창지대가 마르지만, 빗물을 되돌려 다시 채울 수도 있죠. 고갈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에요. 다음 편 「바다가 변한다」에서는, 모든 물이 닿는 마지막 집 바다의 변화를 봅니다.


▶ 함께 읽기
– [물이야기 ⑥] 바다가 변한다 — 신맛이 짙어지는 바다
– [물이야기 ⑦] 보이지 않는 물을 입고 먹는다 — 곡창지대 지하수와 내 식탁
– [물이야기 ④] 얼음의 시계 —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물, 빙하

참고 자료
– [1] USGS / Gleeson et al. (2016, Nature Geoscience) — 담수 분포·지하수 ‘화석’ 94% https://www.nature.com/articles/ngeo2590
– [2] Bierkens & Wada (2019, Environ. Res. Lett.) — 전 지구 지하수 고갈 약 304 km³/년(2010년 기준)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1748-9326/ab1a5f
– [3] 자카르타 지반침하·수도 이전 / 멕시코시티 침하(연 최대 50cm·식수 약 70% 지하수) https://www.space4water.org/news/jakarta-nusantara-land-subsidence-and-other-pressing-water-challenges-sinking-mega-city
– [4] 오갈랄라 대수층 고갈 / 사우디 화석수 소진·2016 밀 생산 종료 https://eros.usgs.gov/earthshots/fossil-water
– [5] Nature (2024, Jasechko 등) — ‘고갈은 필연 아님’·북중국평원 회복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3-068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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