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Erik Jan Leusink / Unsplash
물발자국과 가상수 — 한국이 알고 보면 ‘물 수입 대국’인 이유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물은 2리터 남짓이지만, 먹고 입는 것에 숨어 ‘쓰는’ 물은 그 수천 배입니다. 소고기 1kg을 식탁에 올리는 데 약 15,000리터(욕조 150개), 300g 스테이크 한 점에도 욕조 46개의 물이 이미 쓰였죠. 이렇게 제품에 숨은 물을 ‘가상수’라 부르는데, 곡물 대부분을 수입하는 한국은 식량을 통해 막대한 물을 사실상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저 바깥의 물’을 따라다녔어요. 이제 시선을 돌릴 차례예요 — 바로, 우리 자신에게로.
2부에서 물의 위기를 봤죠. 그런데 그 이야기엔 정작 ‘사람’이 빠져 있었어요. 우리는 물을 얼마나, 어떻게 쓰고 있을까요? 여기서 깜짝 놀랄 사실 하나 —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물은 2리터 남짓이지만, 우리가 매일 ‘쓰는’ 물은 그 수천 배예요. 어떻게요? 보이지 않게, 우리가 먹고 입는 것들 속에 숨어서요. 오늘은 그 ‘보이지 않는 물’의 정체를 밝힙니다.
1. 스테이크 한 점에, 욕조 46개
첫 번째 퀴즈 — 소고기 1kg을 식탁에 올리려면, 물이 얼마나 들까요? 10리터? 100리터?
정답은 무려 약 15,000리터예요(정확히는 15,415리터). 욕조(약 100리터)로 154개 분량! 소가 먹는 풀과 사료를 기르고, 소를 키우고, 고기를 손질하는 모든 과정에 그만큼의 물이 들어가거든요(이 중 약 94%는 농작물에 내린 빗물이에요).[1] 그래서 300g짜리 스테이크 한 점에도 욕조 46개의 물이 이미 ‘사라져’ 있어요. 우리가 포크를 들기도 전에요.
이렇게 어떤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물 전체를 ‘물발자국’, 그리고 그 안에 ‘숨어서 함께 거래되는 물’을 ‘가상수(virtual water)’라고 불러요.[1] 발자국처럼 눈엔 안 보이지만 분명히 찍혀 있는 물인 거죠. 다른 것들도 볼까요?
| 제품 | 물발자국(글로벌 평균, 추정) |
|---|---|
| 소고기 1kg | 약 15,000리터 |
| 치즈 1kg | 약 3,000~5,000리터 |
| 쌀 1kg | 약 2,500리터 |
| 청바지 1벌 | 약 7,500~10,000리터(면화 기준) |
| 면 티셔츠 1장 | 약 2,700리터 |
| 커피 1잔 | 약 130리터 |
“우리는 물을 ‘마시기’보다, 물을 ‘입고 먹는다’ — 보이지 않게, 훨씬 많이.”
- 이 수치들은 글로벌 평균·추정이라 폭이 커요. 같은 제품도 지역·재배 방식에 따라 몇 배씩 달라지므로 단일 수치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2. 그래서 우리는, 물을 ‘수입’한다
여기서 기발한 발상이 등장해요. 물이 부족한 나라가 굳이 물을 길어오지 않아도, 물이 많이 든 ‘식량’을 수입하면 사실상 물을 수입하는 셈이 돼요. 이게 ‘가상수 무역’이에요. 토니 앨런이라는 학자가 1993년에 제안한 개념인데 — 중동 같은 물 부족 지역이 ‘물 전쟁’ 없이 버틴 비결이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물 수입’이었어요.[1] 지금도 해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가상수가 식량을 타고 국경을 넘나들어요. 주로 미국·브라질 같은 농업 대국이 ‘수출’하고, 일본·독일 같은 나라가 ‘수입’하죠.

3. 한국은, 알고 보면 ‘물 수입 대국’
두 번째 퀴즈 — 한국은 비도 제법 오는데, ‘물 수입국’일까요 아닐까요?
놀랍게도, 세계적인 물 수입국이에요. 비결은 ‘식량’이에요.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약 19.5%로 주요국 최하위권이고(밀은 0.7%, 옥수수는 0.8%밖에 자급 못 해요), 나머지는 거의 다 수입해요. 그 수입 곡물에 담겨 따라 들어오는 가상수가 연평균 약 160억 m³로 추정돼요(산정 방식에 따라 차이가 커요) — 그걸 대주는 건 주로 미국·중국·브라질이에요.[1][3] 즉 우리 밥상의 물 상당 부분이, 사실은 지구 반대편 농지의 물·지하수에서 온 거예요.
“한국의 수도꼭지 절반은, 미국 중서부 곡창지대의 지하수에 연결되어 있다.”
앞에서(EP5) 미국 곡창지대의 지하수가 마르고 있다고 했죠? 그게 남의 일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어요. 우리가 값싼 수입 곡물을 먹을 때, 그 곡물을 기른 나라의 지하수도 함께 ‘소비’되고 있거든요. NASA가 참여한 연구(Dalin 외, 2017년 네이처)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사라지는 화석 지하수의 약 11%가 ‘국제 거래되는 식량’을 기르는 데 쓰여요.[2] 내 식탁과 지구 반대편의 우물이, 보이지 않는 물관으로 이어져 있는 셈이에요.

4. 죄책감이 아니라, ‘보는 눈’
오해는 말기로 해요. 이건 ‘고기 먹지 마라’, ‘청바지 사지 마라’는 잔소리가 아니에요. 물을 수입하는 것 자체도 나쁜 게 아니고요(오히려 물 부족 나라엔 현명한 전략이에요). 핵심은 ‘보이지 않던 물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에요. 내 선택 뒤에 어떤 물이, 어디서, 얼마나 쓰였는지 한 번이라도 떠올리는 것 — 그게 낭비를 줄이는 첫걸음이거든요. 실제로 버려지는 음식에는 그걸 기른 물까지 통째로 버려져요. 음식을 남기지 않는 작은 일이, 보이지 않는 물을 아끼는 큰 일이 되는 이유예요.
마치며 — 내 컵 밖의 물
우리는 하루 2리터를 마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먹고 입는 것들 속에 숨은 수천 리터의 물과 함께 살아가요. 그 물은 대부분 ‘내 컵 밖’,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땅과 강과 지하수에서 왔어요. 물을 ‘본다’는 건, 결국 그 물이 지나온 사람과 땅까지 보는 일이에요.
“보이지 않는다고, 공짜는 아니다. 우리가 입고 먹는 모든 것에는, 누군가의 물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물이 식량을 타고 지구를 도는 동안 — 정작 ‘마실 물 한 모금’이 없어서 매일 몇 시간씩 물을 길어 나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같은 지구, 같은 물인데 왜 누구는 넘치고 누구는 목마를까요? 다음 편에서는 물의 가장 아픈 질문 — ‘누구의 물인가’로 들어갑니다. 「누구의 물인가」에서 만나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 ‘물발자국’과 ‘가상수’가 뭔가요?
A. 어떤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물 전체가 ‘물발자국’이고, 그 안에 숨어 함께 거래되는 물이 ‘가상수’입니다. 예를 들어 소고기 1kg에는 약 15,000리터의 물발자국이 있고, 그 고기를 수입하면 그만큼의 가상수를 수입하는 셈이에요.
Q. 소고기 1kg에 정말 15,000리터가 드나요?
A. 글로벌 평균으로 약 15,415리터입니다(Mekonnen & Hoekstra). 다만 이 중 약 94%는 사료작물에 내린 빗물이고, 생산 방식·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단일 수치로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Q. 비가 제법 오는 한국이 왜 ‘물 수입국’인가요?
A. 곡물 자급률이 약 19.5%(밀 0.7%, 옥수수 0.8%)로 매우 낮아 식량을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입니다. 그 식량에 담긴 ‘가상수’가 연 약 160억 m³로 추정돼, 사실상 막대한 물을 수입하는 나라가 됩니다.
결론 — 보이지 않던 물을 보이게
우리는 마시는 물보다 훨씬 많은 물을 ‘입고 먹어요’. 그 물은 대부분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땅에서 왔죠. 죄책감을 가지라는 게 아니라, 그 연결을 한 번 ‘보는 것’ — 특히 음식을 남기지 않는 작은 습관이 보이지 않는 물을 아끼는 큰 일이 됩니다. 다음 편 「누구의 물인가」에서는 물의 가장 아픈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 함께 읽기 – [물이야기 ⑧] 누구의 물인가 — 같은 지구, 누구는 넘치고 누구는 목마른 이유 – [물이야기 ⑤] 보이지 않는 저금통 — 곡창지대의 지하수가 마른다 – [물이야기 ⑨] 세 개의 수도꼭지 — 농사·발전·AI가 같은 물을 쓴다
참고 자료 – [1] Mekonnen & Hoekstra / Water Footprint Network·FAO — 제품 물발자국·가상수 무역 https://www.waterfootprint.org/resources/Mekonnen-Hoekstra-2011-WaterFootprintCrops.pdf – [2] Dalin et al. (2017), Nature(NASA GISS 공동) — 사라지는 지하수의 약 11%가 국제 교역 식량 생산에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21403 – [3] 경향신문 (2024) — 한국 곡물자급률 약 19.5% https://www.khan.co.kr/article/20240628122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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