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Long Ba Mui / Pexels
22억 명의 갈증, 빼앗긴 2억 시간, 그리고 ‘Day Zero’ — 물 불평등은 설계의 문제다
전 세계 약 22억 명이 안전하게 관리되는 식수를, 약 34억 명이 안전한 위생을 누리지 못합니다 — 지구 인구의 4명 중 1명꼴이죠. 물이 멀면 누군가는 그것을 길어 와야 하는데, 여성·여아가 그 일에 쓰는 시간만 하루 약 2억 시간입니다. 케이프타운의 ‘Day Zero’처럼 부자 도시도 예외가 아니고요. 물 불평등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고칠 수 있는 ‘설계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지구 어딘가의 한 소녀는 물을 길으러 집을 나섰어요. 학교가 아니라요.
앞 편에서 우리는, 물이 식량을 타고 지구를 넘나든다는 걸 봤어요. 그런데 그 풍요로운 물의 흐름 바깥에서, 누군가는 ‘마실 물 한 모금’을 얻으려고 매일 몇 시간을 걸어요. 같은 지구, 같은 물인데 — 왜 누구는 수도꼭지만 틀면 되고, 누구는 하루의 절반을 물에 바칠까요? 오늘은 물의 가장 아픈 질문, ‘누구의 물인가’로 들어갑니다.

1. 22억 명 — 깨끗한 물이 없는 사람들
숫자부터 보죠. 전 세계에서 안전하게 관리되는 깨끗한 물을 못 쓰는 사람이 약 22억 명, 안전한 위생시설이 없는 사람은 약 34억 명이에요(WHO·UNICEF, UN SDG 2025 보고서).[1] 지구 인구의 4명 중 1명, 절반에 가까운 수치예요.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틀면 나오는 깨끗한 물’이, 누군가에겐 평생의 소원인 거죠. 더 뼈아픈 건 — 안전한 물·위생을 보편적으로 달성하자는 국제 목표(SDG 6)의 세부 항목들이, 지금 단 하나도 정상 궤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에요.[1]
“틀면 나오는 깨끗한 물 — 지구의 네 명 중 한 명에게는, 그게 평생의 소원이다.”

2. 빼앗긴 시간 — 물 긷는 일은 왜 ‘여성의 일’이 됐나
물이 멀면, 누군가는 그 물을 ‘길어 와야’ 해요. 그리고 그 일은 대부분 여성과 여자아이에게 돌아가요. 전 세계 여성·여아가 물을 길어 나르는 데 쓰는 시간을 모두 합치면, 하루에 약 2억 시간이에요(UNICEF).[3] 매일이요. 물통을 머리에 이고 왕복 몇 시간을 걷는 동안, 소녀는 학교에 못 가고 여성은 일터에 못 가요. 물 한 양동이의 무게에는, 생존만이 아니라 ‘교실과 일터로 갈 수 있었던 시간’까지 담겨 있는 거예요.
“물 한 양동이의 무게에는, 그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이건 ‘불쌍함의 통계’가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의 증거’예요. 물이 집 가까이 오면 여아 취학률이 곧바로 오르거든요 — 물 문제는 곧 교육·성평등 문제이기도 합니다.

3. ‘Day Zero’ — 부자 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물 위기는 ‘가난한 나라’만의 일일까요?
아니에요. 큰 도시도 수도꼭지가 마르는 ‘Day Zero(물 공급 차단일)’ 코앞까지 갔어요. 남아공 케이프타운(2018)은 저수지가 떨어져 ‘저수율 13.5%에 도달하면 수돗물을 끊는다’는 D-데이를 코앞에 뒀다가, 시민들이 물 소비를 30% 줄이고 비도 와준 덕에 가까스로 모면했어요. 인도 첸나이(2019)는 4대 저수지가 사실상 바닥났고, 이란은 2025년 수도 테헤란의 저수지 잔여량이 5% 미만이라는 보도가 나올 만큼 위기가 깊어졌어요.[1][4] 공통점이 있어요 — 기후변화가 가뭄을 당기고, 도시의 관리 실패가 방아쇠를 당겼다는 거예요. 그리고 위기가 닥치면, 정보도 절약 수단도 적은 가난한 동네가 가장 먼저·가장 크게 다쳐요.
4. 한국 — ‘풍족한 비, 가난한 물’
그럼 비도 제법 오는 한국은 안전할까요? 의외로 그렇지 않아요. 한국은 연강수량이 약 1,300mm로 세계 평균(약 800mm)보다 많은데도, 물 스트레스가 높은 편에 속해요.[1] 이유는 두 가지예요 — 비가 여름 장마에 ‘몰빵’되어 정작 봄·가을엔 부족하고, 인구밀도가 높아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물의 양이 적거든요. ‘물은 있었다. 다만 쓸 수 있는 곳에, 쓸 수 있는 때에 없었을 뿐’인 나라인 거죠. 물 불평등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시간과 장소의 문제’로 와 있어요.
5. 그래서 — 무엇을 할 수 있나
다행히 이 이야기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아요. 케이프타운은 가구별 물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공개해, 이웃끼리 ‘덜 쓰기’ 분위기를 만들며 소비를 30%나 줄였어요(여기서도 ‘재서 보여주는 것’의 힘이 통했죠). 멕시코시티는 빗물 수집 시설을 수만 가구로 늘리고 있고, 첸나이는 하수를 재처리해 다시 쓰는 데 투자해요. 2025년 한 연구는, 빗물 수집만 잘 해도 최대 약 20억 명에게 안전한 물을 줄 잠재력이 있다고 봐요(이론적 잠재력·범위 추정).[2] 물 불평등은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고칠 수 있는 ‘설계’의 문제예요.
“물 불평등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고칠 수 있는, 설계의 문제다.”
마치며 — 같은 물, 다른 삶
물은 지구를 수십억 년째 공평하게 돌고 있어요. 정작 공평하지 않은 건 물이 아니라, 그 물에 닿을 수 있는 ‘기회’예요. 누군가는 수도꼭지를 틀고, 누군가는 몇 시간을 걷는 그 차이는 — 하늘이 정한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든 거예요. 그러니 사람이 고칠 수도 있어요. ‘누구의 물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결국 ‘모두의 물’이어야 하니까요.
“물은 공평하게 돈다. 공평하지 않은 건, 그 물에 닿을 ‘기회’다 — 그리고 그건, 우리가 만든 것이다.”
자, 이제 시리즈의 마지막 한 편이 남았어요. 물이 부족한 시대에, 우리는 물을 두고 또 다른 경쟁을 시작했어요 — 농사도, 발전도, 심지어 AI까지 같은 물을 원하거든요. 모든 이야기를 ‘해법과 희망’으로 모으는 마지막 편, 「세 개의 수도꼭지」에서 만나요. 거의 다 왔어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 안전한 물을 못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A. 약 22억 명이 안전하게 관리되는 식수를, 약 34억 명이 안전한 위생을 누리지 못합니다(WHO·UNICEF, UN SDG 2025 보고서). 지구 인구의 약 4명 중 1명꼴이며, SDG 6의 세부 목표는 현재 하나도 정상 궤도에 있지 않습니다.
Q. ‘Day Zero’가 뭔가요?
A. 도시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는 날을 말합니다. 케이프타운은 2018년 ‘저수율 13.5%에 도달하면 단수’ 직전까지 갔다가 소비를 30% 줄여 모면했고, 첸나이(2019)·테헤란(2025)도 비슷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부자 도시도 예외가 아닙니다.
Q. 비가 많은 한국도 물 부족인가요?
A. 의외로 그렇습니다. 연강수량은 약 1,300mm로 세계 평균보다 많지만, 비가 여름에 몰리고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쓸 수 있는 물이 적습니다. ‘있을 때·있는 곳’의 문제로 물 스트레스가 높은 편입니다.
결론 — 물 불평등은 고칠 수 있는 ‘설계’
물은 공평하게 돌지만, 그 물에 닿을 기회는 공평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불평등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 사람이 고칠 수도 있죠. 케이프타운의 ‘재서 보여주기’, 빗물 수집 같은 해법이 그 증거예요. 마지막 편 「세 개의 수도꼭지」에서, 농사·발전·AI가 얽힌 매듭과 그 해법을 봅니다.
▶ 함께 읽기
– [물이야기 ⑨] 세 개의 수도꼭지 — 농부와 발전소와 AI가 같은 강을 쓴다
– [물이야기 ⑦] 보이지 않는 물을 입고 먹는다 — 물은 식량을 타고 흐른다
– [물이야기 ⑤] 보이지 않는 저금통 — 위기는 가장 약한 사람을 먼저 덮친다
참고 자료
– [1] WHO/UNICEF JMP·UN-Water·UN SDG 2025 — 안전한 물 22억 명·위생 34억·SDG 6·Day Zero·한국 물 스트레스 https://unstats.un.org/sdgs/report/2025/goal-06/
– [2] Nature Communications (2025) — 빗물 수집 잠재력(최대 약 20억 명, 범위 추정)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5-66429-w
– [3] UNICEF (2016) — 여성·여아 물 수집 하루 약 2억 시간 https://www.unicef.org/press-releases/unicef-collecting-water-often-colossal-waste-time-women-and-girls
– [4] WRI — Cape Town·Chennai ‘Day Zero’ 교훈 https://www.wri.org/insights/responding-day-zero-equitably-water-crisis-lessons-cape-town-and-chenn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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