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강물, 다른 숫자

사진: Carles Rabada / Unsplash

등대지기 · 측정이 미래다

녹조 ‘클로로필a’ 수치는 어떻게 측정되나 — ‘방법이 그린 그림’

같은 강물을 떠서 서로 다른 실험실에 보내면, 클로로필a 농도가 조금씩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조작이 아닙니다. 그 초록을 ‘재는 방법’ — 용매도, 파장도, 계산식도 — 이 기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2016년, 이 모호함을 비켜 녹조 경보의 핵심 잣대를 ‘클로로필a’에서 ‘유해남조류 세포수’로 바꿨습니다.

여름이면 강이 초록으로 물들고, 뉴스에는 ‘클로로필a 농도’라는 숫자가 뜹니다. 우리는 그 숫자를 보고 안심하거나 불안해하죠. 그런데 만약, 같은 강물을 떠서 서로 다른 실험실에 보냈더니 조금씩 다른 숫자가 돌아온다면? 조작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초록을 ‘재는 방법’이 여럿이기 때문입니다.

클로로필은 ‘하나’가 아니다

먼저 의외의 사실 하나. 우리가 ‘클로로필’이라 뭉뚱그려 부르는 것은 단일 물질이 아니라 여러 색소의 합창단입니다. 모든 조류에 공통인 클로로필a가 주인공이지만, 곁에는 녹조류·식물의 클로로필b, 규조류·와편모조류의 클로로필c가 있고, 조류가 늙거나 죽으면 생기는 분해산물인 페오피틴까지 뒤섞입니다. ‘클로로필a 농도’라는 값은, 이 합창단에서 주인공의 목소리만 골라 들으려는 시도인 셈입니다.

클로로필은 하나가 아니다 — 색소들의 합창단

같은 물, 다른 숫자 — 잣대가 여럿이라서

문제는 그 ‘골라 듣는 방법’이 기관마다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방식은 시료에서 색소를 녹여낸 뒤 빛의 흡수를 재는 분광광도법입니다. 보통 90% 아세톤으로 색소를 추출하고 약 664~665㎚ 부근의 흡광도를 읽죠. 그런데 미국 표준방법(Standard Methods), 한국 수질오염공정시험기준, 미국 환경보호청(EPA), 국제 해양학계의 방식이 — 추출 용매도, 파장도, 계산식도 조금씩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색소라도 어떤 용매에 녹였느냐에 따라 빛을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같은 시료라도 ‘어느 책의 방법을 따랐는지’에 따라 농도가 미묘하게 다르게 나옵니다. 미국 호소관리학회(NALMS)는 아예 ‘표준화 없이 기관 간 클로로필 수치를 비교하는 것은 의심해야 한다’고 못 박습니다.

같은 물, 다른 숫자 — 기관마다 다른 잣대

사실 이 의문은 새롭지 않습니다. 30년 전 대학원 실험대에서도, 같은 시료를 두 권의 책으로 재면 값이 미묘하게 어긋났습니다. 그래서 논문에는 국제 표준방법을 쓰고, 환경영향평가처럼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을 때는 한국 공정시험법을 따로 썼습니다 — 값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 품은 작은 의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말끔히 풀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녹조 수치는 자연이 아니라, ‘방법이 그린 그림’이다.”

죽은 색소의 그림자 — 페오피틴

가장 골치 아픈 건 분해산물 ‘페오피틴’, 곧 ‘죽은 클로로필’입니다. 살아 있는 클로로필a와 죽어 부서진 페오피틴은 빛의 거의 같은 자리(약 665㎚)에서 겹쳐 보여, 한 번의 측정으로는 갈라지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죽은 색소’를 ‘살아 있는 클로로필’로 잘못 셀 수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50년 넘은 묘책을 씁니다(Lorenzen, 1967). 추출액에 산(酸)을 한 방울 넣어 살아 있던 클로로필a를 전부 페오피틴으로 바꾼 뒤, 산을 넣기 전과 후의 빛 변화를 비교해 둘을 역산하는 것입니다. 영리하지만 완벽하진 않습니다. 클로로필b·c의 간섭은 그대로 남고, 시료가 늙고 분해될수록 오차가 커집니다.

죽은 색소의 그림자 — 페오피틴과 산성화 보정

기준표에는 ‘클로로필a’라고 적혀 있지만, 우리가 실제로 손에 쥐는 값은 ‘클로로필a를 중심으로 한, 색소 일족의 합산값’에 가깝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분석가는 정직합니다. 모르고 재는 쪽이 더 많은 게 문제죠.

한국의 선택 — ‘무엇으로 재느냐’를 바꾸다

그래서일까요. 한국은 2016년부터 녹조 경보의 핵심 잣대를 ‘클로로필a 농도’에서 ‘유해남조류 세포수’로 바꿨습니다.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클로로필a가 녹조와의 상관성이 낮고, 유해남조류는 기준을 넘었는데 클로로필a는 기준 아래여서 경보가 누락되는 사례가 있었으며, 클로로필만으로는 ‘해로운 남조류’를 특정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친수활동(수영·낚시·수상레저) 구간의 조류경보는 유해남조류 세포수가 1㎖당 2만 개를 넘으면 ‘관심’, 10만 개를 넘으면 ‘경계’가 발령됩니다. (상수원 구간은 기준이 더 낮아 1,000·10,000개로 따로 운영됩니다.) 그리고 2024년에는 여기에 남조류 독소(마이크로시스틴 등) 지표까지 더해졌습니다 — ‘무엇으로 재느냐’가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의 선택 — 클로로필a에서 유해남조류 세포수로

측정의 모호함을 피하려는 의도였는지까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무엇으로 재느냐’를 바꾸는 일이 곧 ‘위험을 보는 눈’을 바꾸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같은 강물인데 왜 실험실마다 클로로필 수치가 다른가요?

A. 색소를 추출하는 용매, 흡광도를 읽는 파장, 농도로 바꾸는 계산식이 표준(미국·한국·EPA·국제 해양학계)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조작이 아니라 ‘방법의 차이’입니다.

Q. 클로로필a는 단일 물질인가요?

A. 아닙니다. 클로로필a가 주인공이지만 클로로필b·c, 그리고 분해산물 페오피틴까지 섞여 있습니다. ‘클로로필a 농도’는 사실상 색소 일족의 합산값에 가깝습니다.

Q. 한국은 왜 녹조 경보 기준을 바꿨나요?

A. 클로로필a의 낮은 상관성, 경보 누락 사례, 유해남조류를 특정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2016년 ‘유해남조류 세포수’로 바꿨습니다. 2024년에는 독소 지표도 추가됐습니다.

Q. 그럼 측정값을 믿지 말라는 뜻인가요?

A. 아닙니다. 측정을 의심하라는 게 아니라, 그 측정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는지 ‘알고’ 쓰자는 것입니다.

마치며 — 재는 법이, 보는 눈이다

우리가 환경을 두고 벌이는 거의 모든 논쟁 — 이 강이 위험한가, 저 정책이 효과가 있었나 — 은 결국 ‘숫자’ 위에서 벌어집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어떻게 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 우리는 먼저 그 측정의 약속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기계를 쓰면 이 모든 차이가 사라질까요. 색소를 하나씩 줄 세워 분리한다는 정밀 장비, HPLC가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더 정밀한 길’로 들어가 봅니다 — 그리고 거기에도 함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재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그러나 ‘어떻게 재는가’를 모르면, 지키는 줄 착각할 뿐이다.”


▶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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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APHA Standard Methods 10200 H · US EPA Method 446.0 · Jeffrey & Humphrey(1975) · Ritchie(2006) · NALMS · Lorenzen(1967) · 환경부 조류경보제(2016 전환·친수 관심 20,000·경계 100,000 cells/mL·2024 독소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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