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존층의 부활」 시리즈 · EP2 — 모든 나라가 받아들인 약속, 몬트리올 의정서
몬트리올 의정서는 어떤 약속이었을까? 1987년 채택된 오존층 파괴 물질 규제 조약으로, 원안은 선진국 CFC 소비를 1998년까지 50% 줄이는 비교적 조심스러운 수준에서 시작했다. 새 과학 정보에 맞춰 일정을 앞당기는 ‘조정’ 조항 덕에 규제는 계단처럼 강해졌고, 198개 당사자가 비준해 UN 역사상 최초의 보편적 비준 조약이 됐다.
지구의 190여 개 나라가 단 한 번이라도 같은 약속에 함께 서명한 적이 있을까. 올림픽 개최지 하나, 국제기구 의장 한 자리를 두고도 의견이 갈리는 세계다. 그런 지구에서 모든 나라가 빠짐없이 같은 문서를 받아들인 흔치 않은 기록이 있다. 그 첫 기록을 만든 것이 오존층을 지키기 위한 조약이다. 이 시리즈의 1편에서 보았듯 1985년 남극 하늘의 구멍이 확인되었고 — 인류는 불과 2년 만에 답을 내놓았다. 이번 편은 그 합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작동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골격을 먼저 세우다 — 비엔나 협약(1985)

출발점은 1985년 3월 22일 채택된 비엔나 협약이다(발효는 1988년 9월 22일).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유엔환경계획(UNEP) 오존사무국 자료에 따르면, 이 협약은 구체적인 감축 의무를 담지 않은 '프레임워크(골격) 협약'이었다.[1][2] 누가 얼마나 줄일지는 빈칸으로 둔 채 '오존층 보호를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한다'는 틀부터 먼저 합의한 것이다. 이 골격이 2년 뒤 구체적 의무를 담는 후속 의정서의 토대가 된다.
눈여겨볼 대목은 시점이다. 협약이 채택된 1985년 3월은 남극 오존홀 발견 논문이 세상에 나온 바로 그해다. 결정적 증거가 다 굳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협력의 틀부터 먼저 세워 둔 셈이다. 위기가 완전히 입증되기 전에 움직였다는 것 — 돌이켜 보면 이것이 첫 번째 결정적 차이였다.
작게, 그러나 고칠 수 있게 — 몬트리올 의정서(1987)
1987년 9월 16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오존층 파괴 물질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된다(발효 1989년 1월 1일).[3] EPA 자료에 따르면 원안의 의무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조심스러운 수준이었다. 선진국은 CFC 소비를 1986년 수준 대비 1994년까지 20%, 1998년까지 50% 줄이고, 소화 설비 등에 쓰이던 할론은 1986년 수준에서 생산·소비를 동결한다 — 전폐가 아니라 감축과 동결, 거기까지가 1987년의 합의였다.[1][8]
그러나 이 의정서에는 훗날 운명을 가른 장치가 하나 숨어 있었다. EPA가 의정서의 강점으로 꼽는 '조정(adjustment)' 조항이다.[1] 새로운 과학적 정보가 나오면 이미 규제 중인 물질의 감축 일정을 신속하게 앞당길 수 있고, 그 조정은 비준국 전체에 자동으로 적용된다. 조약을 처음부터 다시 협상하지 않고도 과학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게 설계해 둔 것이다. 완벽한 약속을 한 번에 만들려 하지 않고 틀린 곳을 빠르게 고칠 수 있는 약속을 만든 것 — 이것이 두 번째 차이였다.
약속은 점점 빨라졌다 — 개정의 역사

이 장치는 실제로 작동했다. EPA와 UNEP 오존사무국이 정리한 개정 연혁을 따라가 보면, 규제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단처럼 강해진다.[1][4]
런던 개정(1990)은 CFC·할론·사염화탄소를 선진국 2000년까지, 개도국 2010년까지 전폐하기로 했고 메틸클로로포름을 규제 목록에 추가했다. 이때 개도국의 이행을 돕는 재정 메커니즘이 만들어졌고, 1991년 의정서 제10조에 따라 다자기금(Multilateral Fund)으로 설립됐다.[7] 선진국이 재원을 대어 개도국의 전환 비용을 지원하는 구조다.
코펜하겐 개정(1992)에서는 일정이 대폭 앞당겨졌다. 선진국의 CFC·사염화탄소·메틸클로로포름 전폐 시한이 1996년으로 당겨졌고(할론은 1994년), CFC 기준으로는 런던 개정의 2000년보다 4년, 메틸클로로포름은 2005년보다 9년 빨라진 것이다. 대체물질로 쓰이던 HCFC(수소염화불화탄소)의 단계적 폐지 일정도 이때 도입됐다. 이어 몬트리올 개정(1997)은 개도국 HCFC 전폐와 메틸브로마이드 전폐를, 베이징 개정(1999)은 HCFC의 생산·교역 규제 강화를 더했다.
개정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2007년 몬트리올 당사국회의에서는 새 개정 절차 없이 바로 그 '조정' 조항을 통해 HCFC 감축 일정이 다시 앞당겨졌다.[4] 1987년에 심어 둔 장치가 20년 뒤에도 작동한 것이다. 1987년의 '20% 감축'이 5년 만에 '1996년 전폐'로 바뀐 이 가속의 역사 — 그것이 몬트리올 의정서의 진짜 줄거리다.
198 — 모든 나라의 숫자
UNEP에 따르면 몬트리올 의정서는 198개 당사자가 비준했고, 2009년 모체인 비엔나 협약과 함께 UN 역사상 처음으로 '보편적 비준(universal ratification)'을 달성한 조약이 되었다(2026년 4월 기준 두 조약 모두 198개 당사자).[5][6] 선진국과 개도국, 체제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지구의 모든 나라가 받아들인 약속이다. 환경을 둘러싼 수많은 국제 논의가 합의의 문턱에서 주저앉는 동안, 오존은 모두가 같은 자리에 선 드문 사례로 남았다.
오존 조약이 기후 조약이 되다 — 키갈리 개정(2016)
이야기는 한 번 더 확장된다. CFC와 HCFC를 대체하며 보급된 HFC(수소불화탄소)는 오존층은 거의 해치지 않지만 강력한 온실가스였다.[7] 2016년 10월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린 제28차 당사국회의에서 채택된 키갈리 개정(발효 2019년 1월 1일)은 이 HFC를 규제 대상에 새로 넣어 2040년대 후반까지 생산·소비를 80~85% 단계 감축하기로 했다.[1][7]
UNEP는 키갈리 개정이 이행되면 최대 1,050억 톤 CO₂ 상당의 온실가스 배출을 막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7] WMO/UNEP의 2022년 과학평가는 키갈리 개정 준수 시 2100년까지 0.3~0.5℃의 지구 온난화를 피할 것으로 평가했다.[9][10] 오존층을 지키려고 만든 조약이 기후위기 대응의 도구로 한 발 더 내디딘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다룬 '2℃' — 그 운명의 숫자를 향한 싸움에서 오래된 오존 조약 하나가, 약속이 지켜진다면 2100년까지 최대 0.5℃의 짐을 덜어 줄 것으로 추정되는 셈이다.
다자기금이 보여준 원칙
국제 협약의 문장 한 줄은 결국 누군가의 공장 라인과 정비소의 작업대, 장부 위의 비용으로 내려온다. 멀쩡히 쓰던 냉매와 세정제를 왜, 무엇으로 바꿔야 하는지 — 비용은 누가 감당하는지. 작은 사업장일수록 그 부담은 무거웠을 것이다.
그래서 다자기금 이야기가 특별하게 들린다. '먼저, 많이 쓴 나라가 비용의 일부를 함께 진다'는 원칙은 오늘날 우리가 기후 정의라고 부르는 발상의 이른 씨앗이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가난한 나라가 혼자 감당하라'고 떠밀지는 않았다. 국제 약속이 종이 위에서 멈추지 않고 현장의 작업대까지 닿으려면 과학적 명분만으로는 부족하다 — 비용을 나누는 손이 있어야 한다. 오존의 성공에는 그 손의 몫이 컸다.
무엇이 달랐을까
기록을 정리하면 이 조약의 골격이 또렷이 보인다. 증거가 완성되기 전에 틀부터 만들었고(비엔나), 작게 시작했으며(1987년 원안), 과학이 갱신될 때마다 일정을 앞당길 장치를 심어 두었고(조정 조항), 개도국의 비용을 나누는 구조를 만들었다(다자기금). 그 모든 설계가 모여 '198'이라는 숫자가 되었다.
"좋은 약속은 처음부터 완벽한 약속이 아니라, 틀린 곳을 빠르게 고칠 수 있게 설계된 약속이다."
그렇다면 같은 설계가 더 크고 복잡한 지구적 문제에도 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확인해야 한다 — 이 합의가 실제로 하늘을 바꾸었는지를. 데이터가 보여주는 회복, 그리고 아직 닫히지 않은 숙제. 그 이야기를 3편에서 이어 간다.
자주 묻는 질문 (FAQ)
비엔나 협약과 몬트리올 의정서는 어떻게 다른가요?
1985년 비엔나 협약은 구체적 감축 의무 없이 협력의 틀부터 합의한 ‘골격 협약’입니다. 이 골격을 토대로 2년 뒤인 1987년 채택된 몬트리올 의정서가 구체적인 감축 의무를 담았습니다.
몬트리올 의정서는 왜 잘 작동했나요?
작게 시작하되 새 과학적 정보가 나오면 감축 일정을 신속히 앞당길 수 있는 ‘조정’ 조항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 조정은 비준국 전체에 자동 적용돼, 조약을 다시 협상하지 않고도 과학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다자기금은 무엇을 하는 제도인가요?
다자기금은 1991년 의정서 제10조에 따라 설립된 재정 메커니즘으로, 선진국이 재원을 대어 개도국의 전환 비용을 지원하는 구조입니다. 비용을 나누는 이 원칙이 약속을 현장의 작업대까지 닿게 했습니다.
키갈리 개정은 기후위기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2016년 키갈리 개정은 강력한 온실가스인 HFC를 규제 대상에 새로 넣어 2040년대 후반까지 80~85% 감축하기로 했습니다. UNEP는 이행 시 최대 1,050억 톤 CO2 상당의 배출을 막을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출처
[1] US EPA, "International Treaties and Cooperation about the Protection of the Stratospheric Ozone Layer" (2026-04-09 갱신) — 비엔나·몬트리올 원안·조정 조항·개정 연혁 https://www.epa.gov/ozone-layer-protection/international-treaties-and-cooperation-about-protection-stratospheric-ozone
[2] UNEP Ozone Secretariat, Vienna Convention https://ozone.unep.org/treaties/vienna-convention
[3] UNEP Ozone Secretariat, "The Montreal Protocol on Substances that Deplete the Ozone Layer" https://ozone.unep.org/treaties/montreal-protocol
[4] UNEP Ozone Secretariat, "The Evolution of the Montreal Protocol" — 개정·조정 연혁(2007 몬트리올 조정 포함) https://ozone.unep.org/treaties/montreal-protocol-substances-deplete-ozone-layer/the-evolution-of-the-montreal-protocol
[5] UNEP Ozone Secretariat, Status of Ratification — 198개 당사자 https://ozone.unep.org/all-ratifications
[6] UN, "International Day for the Preservation of the Ozone Layer" — UN 역사상 최초의 보편적 비준(비엔나·몬트리올 공동) https://www.un.org/en/observances/ozone-day
[7] UNEP OzonAction, "About Montreal Protocol" — 다자기금(10조, 1991)·HFC 성격·1,050억 톤·키갈리 https://www.unep.org/ozonaction/who-we-are/about-montreal-protocol
[8] US EPA, "Halons Program" — 할론이 소화 설비 등에 사용 https://www.epa.gov/ozone-layer-protection/halons-program
[9] WMO/UNEP, "Scientific Assessment of Ozone Depletion: 2022", Executive Summary — 키갈리 준수 시 2100년까지 0.3~0.5℃ 회피 https://csl.noaa.gov/assessments/ozone/2022/executivesummary/
[10] UNEP 보도자료, "Ozone layer recovery is on track, helping avoid global warming by 0.5°C" (2023) https://www.unep.org/news-and-stories/press-release/ozone-layer-recovery-track-helping-avoid-global-warming-05degc
사진: Ahmer Kalam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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