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정밀해질수록

사진: Chris Bayer / Unsplash

등대지기 · 측정이 미래다

HPLC로 색소를 줄 세워도 — 차이는 더 미세한 곳으로 숨는다

분광법은 여러 색소를 ‘섞인 채’ 재서 클로로필a의 몫을 추정합니다. HPLC는 색소를 물리적으로 하나씩 갈라 따로 잽니다. 그런데 같은 HPLC라도 ‘무엇으로 감지하느냐(흡광이냐 형광이냐)’에 따라 숫자가 또 갈립니다. 정밀해질수록 차이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미세한 곳으로 숨습니다.

지난 편은 이런 질문을 남겼습니다. 분광광도법이 여러 색소를 ‘섞인 채’ 재서 숫자가 흔들렸다면, 더 좋은 기계로 색소를 하나씩 갈라내면 그 차이는 사라지지 않을까? 그 ‘정밀의 길’ 끝에 HPLC라는 장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 정밀해질수록, 차이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미세한 곳으로 숨습니다.

색소를 ‘줄 세우다’ — HPLC

분광광도법은 여러 색소가 뒤섞인 빛을 한꺼번에 읽고, 계산식으로 클로로필a의 몫을 ‘추정’합니다. HPLC(고성능 액체크로마토그래피)는 접근이 다릅니다. 색소가 가느다란 관(컬럼)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저마다 달라서, 클로로필a·b·c와 페오피틴이 하나씩 차례로 빠져나옵니다. 섞인 채 추정하던 것을, 물리적으로 갈라서 따로따로 재는 것이죠. 분해된 색소(페오피틴)와 온전한 색소도 구분하고, 위성이 우주에서 잰 바다색을 검증하는 기준도 이 HPLC입니다.

색소를 줄 세우다 — 분광법 vs HPLC

그런데 또 갈린다 — 같은 기계, 다른 검출기

함정은 ‘HPLC로 분리한 색소를 무엇으로 감지하느냐’에 있습니다. 검출기가 두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흡광 검출기는 빛을 흡수하는 색소 전체를 봅니다. 형광 검출기는 빛을 되쏘는 색소(클로로필류)만 봅니다. 형광 쪽이 훨씬 민감해서 농도가 낮은 시료에 유리하죠. 문제는, 두 검출기가 ‘같은 것’을 더 정확히 재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같은 HPLC라도, 시료에 따라 두 검출기의 숫자가 어긋납니다.

같은 기계, 다른 검출기 — 흡광과 형광

사실 이건 오래된 경험이기도 합니다. 30년 전, 분광법의 한계를 느끼고 ‘HPLC야말로 진짜 해답’이라 믿고 직접 색소를 돌려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흡광 검출기와 형광 검출기가 시료마다 다른 값을 내놓았습니다. 한참 뒤에야 알았죠 — 그건 손끝의 실수가 아니라, 학계도 익히 아는 문제였다는 것을.

숨은 난관 둘 — 겹쳐 나오기, 그리고 없는 잣대

HPLC도 만능은 아닙니다. 어떤 색소들은 컬럼에서 거의 같은 시간에 함께 빠져나와(공용출) 깔끔히 갈라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확히 재려면 ‘이게 클로로필a다’ 하고 맞춰볼 표준 색소가 있어야 하는데, 일부 색소는 그 표준물질 자체를 시중에서 구할 수 없습니다. 잣대로 삼을 자(尺)가 아예 없는 셈이죠.

그래서 세계가 맞춰왔다 — 그래도 진행형

이 편차를 줄이려 국제적으로 오래 애써왔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같은 시료를 세계 여러 실험실에 나눠 보내, 각자 분석한 결과를 맞춰보는 국제 비교 — 이른바 ‘라운드로빈’(SeaHARRE) — 을 여러 차례 열어 ‘이 정도 오차 안에 들어오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사실상의 표준 분석법(Van Heukelem & Thomas, 2001)도 자리를 잡았죠. 그럼에도 최근까지 비슷한 비교 연구가 계속 나온다는 사실은, 편차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해결됐다’가 아니라 ‘끊임없이 점검하며 관리하는 진행형’인 것입니다.

왜 다들 HPLC를 안 쓰나 — 비용·시간·표준물질

그럼, 왜 다들 HPLC를 안 쓰나

이쯤이면 의문이 듭니다. 가장 정확하다면, 왜 모든 현장이 HPLC를 쓰지 않을까요. 답은 현실적입니다. 장비가 수천만 원이 넘고, 시료 하나를 분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며, 숙련된 분석자와 값비싼 표준 색소가 필요합니다. 매일, 전국에서 돌려야 하는 일상 감시에는 너무 무겁고 느리죠. 그래서 현장은 여전히 값싸고 빠른 분광법에, 또는 다음 편에서 만날 ‘센서’에 기댑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HPLC가 분광법보다 정확한가요?

A. 색소를 물리적으로 분리해 따로 재므로 더 정확합니다. 그러나 검출기 종류(흡광·형광)에 따라, 또 색소가 겹쳐 나오는 경우에 따라 값이 갈릴 수 있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Q. 흡광 검출기와 형광 검출기는 뭐가 다른가요?

A. 흡광은 빛을 흡수하는 색소 전체를, 형광은 빛을 되쏘는 색소(클로로필류)만 봅니다. 둘은 ‘같은 것을 더 정확히’ 재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잽니다.

Q. 그럼 왜 모든 현장이 HPLC를 쓰지 않나요?

A. 장비·표준물질이 비싸고, 분석에 시간이 오래 걸리며 숙련자가 필요합니다. 매일 전국을 감시하는 일상 측정에는 무겁고 느립니다.

마치며

정밀하게 갈수록 차이가 사라질 줄 알았지만, 차이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미세한 곳으로 숨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측정의 진실은 ‘완벽한 한 가지 방법’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 방법으로 재보고, 서로 맞춰보고, 끊임없이 점검하는 그 과정 안에 있죠. 다음 편에서는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내려갑니다 — 강과 바다에 센서를 담가 실시간으로 재는 시대. 그 편리함의 가장 깊은 곳에, 가장 까다로운 함정이 있습니다.

“같은 바닷물도, 어떤 기계로 보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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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Wright et al.(1991), MEPS · Van Heukelem & Thomas(2001), J. Chromatogr. A 910 · Welschmeyer(1994), L&O · SeaHARRE(NASA Technical Memorand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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