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여름, 뒤틀린 사계절

사과 과수원 — 길어진 여름, 뒤틀린 사계절

사진: Pexels·Unsplash

GaiaBeacon 「기후 이야기」 시리즈 · EP5

지난 100여 년간 한국의 여름은 약 25일 길어지고 겨울은 약 22일 짧아졌습니다. 봄꽃은 2주 가까이 일찍 피고, 사과 주산지는 강원으로 북상하며, 꿀벌은 줄고 해충은 늘었습니다. 뒤틀린 사계절이 농업과 생태계를 어떻게 흔드는지 살펴봅니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물들다 겨울이 내려앉는 — 우리가 ‘당연히’ 여겨온 사계절의 순환이 조용히 뒤틀리고 있습니다. 기상청이 100년 이상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의 여름은 25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 짧아졌습니다.[1] 숫자로는 작아 보여도, 그 변화는 달력을 바꾸고, 땅을 바꾸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리듬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 글은 뒤틀린 계절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부딪히는 현장 — 농업과 생태계 — 을 중심으로 한국 사계절 변화의 실상을 짚어봅니다.

달력이 먼저 알아챈다

기상청이 113년(1912~2024년)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과거 30년(1912~1940년)과 비교해 최근 30년(1995~2024년) 여름은 25일 길어졌고, 겨울은 22일 짧아졌습니다.[1] 봄은 5일, 가을은 8일 줄었습니다.

수치를 계절의 언어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겨울이 가장 긴 계절(109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름이 123일로 가장 깁니다. 최근 10년(2015~2024년)만 따지면 여름이 평균 130일까지 늘었습니다.[1] 열대야 일수는 더 두드러집니다. 1910년대 6.7일이던 열대야가 2020년대에는 28.0일 — 4.2배로 뛰었습니다.[1]

봄이 ’짧아진다’기보다 봄이 ’빨리 와버린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봄의 시작일은 과거 30년 대비 17일 앞당겨졌고, 여름의 시작일은 11일 빨라졌습니다.[2] 2021년 서울 벚꽃은 3월 24일 피었습니다 — 1922년 관측 이래 100년 만의 최조(最早) 개화로 기록됐습니다.[3] 봄의 문을 여는 꽃이 2주 가까이 일찍 피기 시작했다는 것은 달력보다 땅과 나무가 먼저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24절기도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의 체감 기온이 나타나는 시기는 13일 앞당겨졌고, 여름의 문턱을 알리는 ’입하’는 8일 빠르게 왔습니다.[2] 가장 추운 절기인 ’대한’은 지금 영상의 기온을 보이고, 소한이 대한보다 더 추운 절기로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2] 오랫동안 한국인의 농사 시계였던 24절기가 현실과 어긋나고 있습니다.

과거 30년 대비 최근 30년 계절 길이 변화
과거 30년 대비 최근 30년, 여름은 25일 길어지고 겨울은 22일 짧아졌다.

앞으로의 여름은 얼마나 길어지나

지금까지의 변화는 시작일 수 있습니다. 기상청의 미래 기후변화 시나리오 분석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이 현재 수준으로 계속되는 최고 배출 시나리오(SSP5-8.5) 기준으로 2081~2100년 한국의 여름은 평균 169일 — 약 5개월 반 — 로 늘어납니다.[4] 겨울은 현재 107일에서 40일로 쪼그라듭니다. 기온 최고치는 41.6℃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4]

이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배출 감축이 이루어지는 시나리오(SSP1-2.6)에서는 변화폭이 훨씬 작습니다. 그러나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 어느 경로를 택하느냐에 따라 한국 사람이 경험하는 ’여름의 길이’가 몇 달씩 달라집니다.

고배출 시나리오 2100년 한국 여름·겨울 길이 전망
고배출 시나리오 기준 2100년 한국의 여름은 169일, 겨울은 40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의 가장 직접적 피해자 — 농업

계절이 뒤틀리는 것은 수치의 변화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변화는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직접 흔듭니다.

계절 변화로 흔들리는 작물 지도
계절이 바뀌면 잘 자라던 작물의 지도도 함께 흔들린다. (사진: Pexels·Unsplash, 무료 라이선스)

지역 특산물의 ’지역성’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은 위도별·기후별 특산물이 뚜렷한 나라였습니다. 대구·경북의 사과, 금산의 인삼, 성주의 참외, 이천의 쌀 — 그 지역의 기후와 토양이 만들어낸 고유의 품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사과의 경우 연평균 기온이 8~11℃인 서늘한 환경을 좋아합니다.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대구·경북 지역 사과 재배 면적은 30년 새 44% 줄었고, 같은 기간 강원도의 사과 재배 면적은 247% 늘었습니다.[5] 한때 ’대구 사과’로 불리던 과일은 지금 강원 산간으로 재배지를 옮기고 있습니다.

금산 인삼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산 인삼 재배면적은 2005년 2,210헥타르에서 2015년 1,502헥타르로 10년 만에 약 32% 감소했습니다.[6] 반면 경기 이천(308→510헥타르)과 강원 홍천(388→836헥타르)의 재배면적은 크게 늘었습니다.[6] 재배 적지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30년 새 사과 재배면적 변화
30년 새 사과 재배면적: 대구·경북 −44%, 강원도 +247%.

“북쪽으로 옮기면 되지 않나” — 두 가지 현실적 한계

흔한 반문이 있습니다. “기온이 맞는 곳으로 옮겨서 같은 농사를 지으면 되지 않나?” 답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첫째, 토양이 다릅니다. 기온 조건이 맞더라도 토양의 성분·양분·pH가 원래 재배지와 달라 예전과 같은 품질을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대구 사과의 당도, 금산 인삼의 유효 성분은 그 지역의 토양과 기후가 오랜 세월 빚어낸 결과입니다. 기온이 비슷해진다고 바로 같은 산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둘째, 수분 매개 곤충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꽃가루를 옮기는 꿀벌과 나비 같은 곤충은 식물보다 이동 속도가 느립니다. 작물의 재배지가 북상하더라도, 수분을 맡아줄 곤충의 생태적 분포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실에 차질이 생깁니다. 결국 농민이 직접 인공수분(붓이나 기계로 꽃가루를 옮기는 수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이는 노동력·비용 증가로 이어집니다.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생태학적 원칙이나, 한국에서의 정량적 규모는 아직 공식 통계로 집계되지 않고 있습니다.

꽃과 벌의 엇박자

기후변화가 농업을 흔드는 또 다른 경로가 있습니다 — 수분 매개 곤충의 위기입니다.

국내에서는 2021년 겨울에만 꿀벌 약 78억 마리가 실종됐다는 보고가 나왔고(그린피스 추산), 2022년 9~11월에 추가로 100억 마리, 2023년 초까지 약 140억 마리의 누적 감소가 추정됐습니다.[7] 국내 꿀벌 사육 군수는 2019년 약 274만 군에서 2024년 약 254만 군으로 줄었습니다.[7]

폐사의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응애(기생충)가 1차 원인으로 꼽히는데,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오르고 강수량이 줄면 응애 밀도가 증가합니다.[7] 여기에 밀원식물(꿀벌이 먹이를 얻는 식물) 감소가 겹칩니다.

더 구조적인 문제는 ’생태 엇박자(phenological mismatch)’입니다. 봄이 빨리 오면서 꽃의 개화 시기가 앞당겨지는데, 이를 수분해야 할 곤충의 활동 시기는 같은 속도로 따라오지 못합니다. 꽃이 피어도 꿀벌이 아직 활동 체계를 갖추지 못한 상태라면,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열매 품질이 떨어집니다. 계절의 어긋남이 식탁 위 과일의 품질에까지 연결됩니다.

따뜻한 겨울이 키운 해충

예전 같은 혹독한 겨울은 자연의 해충 방제 수단이었습니다. 꽃매미, 갈색날개매미충, 미국선녀벌레 같은 돌발해충은 추운 겨울 동안 개체 수가 자연적으로 억제됐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이 균형이 깨지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이들 돌발해충 3종의 부화 시기가 평년 대비 6~7일 앞당겨지고 있으며, 농촌진흥청 작물보호과는 “기후변화 등으로 돌발해충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8] 따뜻한 겨울이 해충의 월동 생존율을 높이고, 이른 봄 부화로 농작물 피해 시기도 앞당기는 구조입니다.

길어진 여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9월에도 이어지는 열대야, 5월부터 달아오르는 열기 — 길어진 여름은 사람의 건강도 위협합니다. 질병관리청(KDCA) 집계에 따르면, 2024년 5월 20일부터 9월 30일까지 온열질환자가 3,704명 신고됐고, 추정 사망자는 34명이었습니다.[9] 2023년(2,818명)보다 약 31% 증가한 수치입니다.[9] 2024년 열대야 일수는 20.2일로 역대 1위를 기록했고, 폭염 일수는 24일로 역대 3위였습니다.[9]

이 통계는 온열질환으로 병원이나 응급실을 찾은 사례만을 집계한 것입니다. 실제 더위로 인한 건강 피해는 더 광범위합니다.

한편, 24절기와 실제 계절의 어긋남은 일상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소한에 아직 따뜻하고, 경칩에 이미 꽃이 피어 있고, 처서가 지났는데도 열대야가 계속되는 — 조상이 물려준 계절의 언어가 현실과 맞지 않게 됐습니다.

연간 열대야 일수 증가 추이
연간 열대야 일수: 1910년대 약 6.7일 → 2020년대 28.0일(약 4.2배).

우리가 더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다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 변화가 한국에서 유독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상청과 한국기후변화적응센터(KACCC), WMO의 「State of the Climate in Asia 2024」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 상승 속도는 세계 평균의 약 2배에 달합니다.[10] 아시아 육지 전체의 온난화 속도 또한 세계 평균의 약 2배입니다.[10]

즉, 지구가 평균적으로 뜨거워지는 속도의 두 배로 우리가 사는 곳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이 불균형한 속도가, 사계절 변화를 더 빠르고 더 극적으로 만드는 배경입니다.

기후변화가 한반도의 온도를 올린 100여 년의 과정은 이 시리즈 「기후변화」 EP1 — 「2도의 두려움」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계절이 보내는 신호

숫자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여름이 25일 길어졌습니다. 겨울이 22일 줄었습니다. 열대야가 4.2배로 뛰었습니다. 사과 주산지가 강원으로 옮겨가고 있고, 금산 인삼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꿀벌은 줄고 해충은 늘고 있습니다.

이 변화들은 하나하나는 작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 위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이 변화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꽃이 일찍 피면 벌이 늦고, 벌이 늦으면 열매가 작아지고, 겨울이 따뜻하면 해충이 살아남습니다. 계절의 뒤틀림은 하나의 연쇄입니다.

계절의 변화가 보내는 신호를 듣고 있나요. 달력보다 먼저 알아챈 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출처

[1] 기상청, 「113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 보도자료, 2025년 12월 (경향신문 2025-12-30 보도 기반)
[2] 기상청, 「기후변화가 바꾼 우리나라 사계절과 24절기」 보도자료, 2021-04-27
[3] 한국일보, 「서울 공식 벚꽃 개화일 ‘24일’… 최근 100년 중 가장 빨라」, 2021-03-25
[4] Korea Herald, 「S. Korea faces nearly 6-month summers by 2100 if emissions not cut」, 2024-06-23
[5] LG헬로비전 뉴스토리 / 농촌진흥청 (대구·경북 사과 재배 면적 30년 새 44% 감소, 강원 247% 증가)
[6] 경향신문, 「한반도 온난화로 ’농작물 지도’가 바뀐다 (3)」, 2019-11-03
[7] 그린피스 한국·안동대 산학협력단 「벌의 위기와 보호 정책 제안」 (그린피스 추산)
[8] 농업인신문, 「꽃매미 등 돌발해충 부화 시기 당겨져」 (농촌진흥청 발표 기반)
[9] 질병관리청(KDCA), 「2024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신고현황 연보」, 2025-02-20
[10] 기상청·한국기후변화적응센터(KACCC) / WMO, 「State of the Climate in Asia 2024」

코멘트

“길어진 여름, 뒤틀린 사계절”에 대한 댓글 1개

  1. 봉달슨상 아바타
    봉달슨상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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