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또 다른 얼굴 — 0~100도는, 그저 ‘약속’일 뿐

사진: Alex Sever / Pexels

374도 액체, 뜨거운 얼음, 양성자가 흐르는 초이온수 — 물의 가장 낯선 얼굴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는 건 1기압에서만 통하는 규칙입니다. 압력이 달라지면 물은 약 374도(임계점)까지 액체로 버티고, 100도가 넘어도 어는 ‘뜨거운 얼음(ice VII)’이 되며, 산소는 고정된 채 수소만 강물처럼 흐르는 ‘초이온수’로도 변신해요. 이렇게 낯선 얼굴이 많지만, 생명에 가장 유리한 용매는 결국 물입니다.

드디어 마지막 편이에요. 우리는 물의 마법(①), 4도의 비밀(②), 우주에서 온 내력(③), 숨은 바다(④)를 따라왔어요. 그런데 정작 물 자체는, 우리가 아는 그 모습이 전부일까요? 압력과 온도가 달라지면 물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은, 생명이 깃들 곳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넓다고 속삭여요.

끓는점은 ‘본성’이 아니라 ‘약속’이다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 이건 어디서나 통하는 진리일까요?

아니에요. 그건 ‘1기압’이라는 우리 동네 규칙일 뿐이에요. 압력이 높아지면 끓는점도 올라가서, 물은 약 374℃(임계점)까지도 액체로 버틸 수 있어요. 높은 산에서 밥이 설익는 것도(압력이 낮아 일찍 끓음), 압력솥이 빨리 익히는 것도(압력이 높아 늦게 끓음) 같은 원리예요.

극단적인 예가 깊은 바다의 열수분출구예요. 거기선 400℃에 이르는 물이, 깊은 바다의 엄청난 압력에 눌려 수증기로 끓어오르지 못한 채 솟구쳐요(가장 뜨거운 분출구의 물은 사실 액체도 기체도 아닌 ‘초임계’ 상태예요). 그리고 그 펄펄 끓는 물 곁에서, 햇빛 없이도 생명이 번성하죠.[1] 그러니 ‘물이 액체로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는 말은 — 맞아요.

한 가지만 정확히 — ‘374도 위에서도 평범한 액체’는 아니에요. 그 이상에선 액체와 기체의 경계가 사라진 ‘초임계 유체’라는 제3의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 ‘뜨거운 액체 물’의 상한은 약 374도로 보는 게 맞아요.

끓는점은 약속 — 압력에 따라 달라짐

스무 개가 넘는 얼음, 그리고 ‘초이온수’

얼음은 한 종류일까요?

아니에요. 압력과 온도에 따라 스무 종이 넘는 얼음이 있어요. 그중 ‘뜨거운 얼음(ice VII)’은 약 2만 2천 기압(2.2 GPa) 이상에서 100도가 넘어도 어는 얼음이에요. ‘차가워야 언다’는 상식마저 압력 앞에서는 흔들리는 거죠.[2]

가장 기묘한 얼굴은 초이온수(superionic ice)예요. 산소는 격자에 단단히 고정된 채, 수소(양성자)만 강물처럼 흐르는 ‘반은 고체, 반은 액체’ 상태죠. 미국 연구진이 거대 레이저로 물을 대기압의 약 100만~400만 배로 짓눌러 이 상태를 실제로 만들어 보였어요(2018 Nature Physics·2019 Nature).[3][4] 천왕성·해왕성 같은 ‘얼음 거인’의 내부가 바로 이런 상태일 거라 추정돼요.

천왕성·해왕성의 비뚤어진 자기장이 이 초이온성 얼음 층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어요 — 단, 행성 속을 직접 들여다볼 순 없으니 아직 ‘유력한 추정’이에요.

“가장 차가운 이름을 가진 ‘얼음’이, 수천 도의 불 속에서 행성의 방패가 됩니다.”

초이온수 — 수소가 흐른다

물의 세계 — 넓어지는 ‘생명의 영토’

‘생명이 살 만한 구역(생명 가능 영역)’은 원래 ‘별에서 적당히 떨어져 표면에 액체 물이 있을 수 있는 거리’로만 정의됐어요. 그런데 4편에서 본 얼음 위성의 지하 바다까지 더하면, 물이 액체로 있을 수 있는 곳은 그 띠 바깥으로 훌쩍 넓어집니다.[5] 거리만으로는 더 이상 ‘생명의 자리’를 그릴 수 없게 된 거죠.

두꺼운 물층과 수소 대기를 가진 큰 행성이 생명의 후보가 될 수 있다는 ‘하이션(Hycean)’ 가설도 나왔어요. 최근 제임스웹 망원경이 외계행성 K2-18b에서 흥미로운 분자 신호를 잡기도 했고요. 하지만 — 이건 ‘발견’이 아니라 ‘단서’예요. 통계적 신뢰도가 발견 기준에 못 미치고, 다른 팀의 재분석은 그 신호를 재현하지 못했거든요. ‘유력하나 미확정, 논쟁 중’으로 신중히 다뤄야 해요.[6]

이게 바로 우리 매체가 지키려는 선이에요 — 설레는 가능성은 충분히 전하되, ‘단서’를 ‘발견’으로 부풀리지 않는 것. 그게 신뢰를 지키는 길이니까요.

그래도, 결국 ‘물이 최고’

이렇게 물은 뜨거운 액체로도, 스무 가지 얼음으로도, 양성자가 흐르는 초이온수로도 변신해요. 그런데 이 모든 얼굴을 가지고도, 생명에 가장 유리한 용매는 결국 물이에요. ① 액체로 머무는 온도 범위가 넓고, ② 거의 다 녹이며(①편), ③ 열을 잘 품어 충격을 막아 주고(①편), ④ 무엇보다 얼면 떠서 그 아래 생명을 지키죠(②편). 외계 생명이 메탄 같은 다른 용매를 쓸 가능성을 ‘불가능’이라 할 순 없지만, 우리가 아는 화학에서는 물이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물의 여러 얼굴

마치며 · 평범함이라는, 가장 정교한 기적

다섯 편을 돌아왔어요. 쌍극자 하나가 만든 다섯 마법(①), 호수를 거꾸로 얼려 생명을 구한 4도의 변칙(②), 별의 유언으로 빚어져 소행성에 실려 온 내력(③), 발밑과 얼음 위성에 숨은 바다(④), 그리고 오늘 본 물의 낯선 얼굴들(⑤). 하나하나가 ‘예외’이고 ‘변칙’인데 — 그 변칙들이 모여 생명을 가능하게 했어요.

“물이 액체로 있을 수 있는 영토는, 우리가 그렸던 지도보다 훨씬 넓습니다.”

그러니 다음에 물 한 잔을 마실 때, 잠깐 기억해 주세요. 그 평범해 보이는 한 모금이 사실은 우주에서 가장 정교한 기적이고, 당신은 그 기적으로 만들어진 ‘작은 바다’라는 걸요. 「물의 경이」, 여기서 마칩니다. 함께 경탄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물은 정말 100도에서만 끓나요?

A. ‘1기압’에서만 그래요. 압력이 높아지면 끓는점도 올라가, 물은 약 374도(임계점)까지 액체로 버틸 수 있어요. 깊은 바다 열수분출구에선 400도에 이르는 물이 압력에 눌려 끓어오르지 못한 채 솟구치는데, 가장 뜨거운 건 ‘초임계’ 상태입니다.

Q. ‘뜨거운 얼음’이 진짜 있나요?

A. 있어요. 얼음은 압력·온도에 따라 스무 종이 넘는데, 그중 ‘ice VII’은 약 2만 2천 기압 이상에서 100도가 넘어도 얼어요. ‘차가워야 언다’는 상식이 압력 앞에서 흔들리는 거죠.

Q. K2-18b에서 외계 생명을 발견한 건가요?

A. 아니에요. 제임스웹이 흥미로운 분자 신호를 잡았지만, 통계적 신뢰도가 발견 기준에 못 미치고 다른 팀의 재분석은 그 신호를 재현하지 못했어요(2025). ‘단서’이지 ‘발견’이 아니라, ‘유력하나 미확정·논쟁 중’으로 신중히 봐야 합니다.

결론 — 평범한 물 한 잔이, 가장 정교한 기적

물은 뜨거운 액체로도, 여러 얼음으로도, 초이온수로도 변신하지만, 생명에 가장 유리한 용매는 결국 물이에요. 다섯 편에 걸친 변칙들이 모여 생명을 가능하게 했죠. 다음에 물 한 잔을 마실 때, 그 평범함 속의 기적을 잠깐 떠올려 주세요. 「물의 경이」, 함께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 함께 읽기
– [물의 경이 ①] 물 분자의 마법 — 시리즈의 시작으로
– [물의 경이 ④] 숨은 바다 — 지구가 감춘 물
– [물이야기] 시리즈 — 물의 자원·위기·정의(짝 시리즈)

참고 자료
– [1] Natural History Museum — Hydrothermal vents (심해 열수분출구와 생명)
– [2] London South Bank University, Water — Ice VII (고압 얼음의 상전이)
– [3] Millot, M. et al. — Experimental evidence for superionic water ice using shock compression, Nature Physics (2018)
– [4] Millot, M., Coppari, F. et al. — Nanosecond X-ray diffraction of shock-compressed superionic water ice (ice XVIII), Nature (2019)
– [5] NASA Science — Europa: A World of Ice (얼음 위성 지하 바다)
– [6] A&A (2025) — Insufficient evidence for DMS/DMDS in the atmosphere of K2-18b (K2-18b 신호 비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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