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온 물 — 별의 유언이 된, 한 모금

사진: Colin Lloyd / Pexels

수소는 빅뱅이, 산소는 죽은 별이 — 당신 컵 속 물의 출생의 비밀

컵 속 물 한 모금의 재료는, 지구가 태어나기 한참 전 우주에서 따로따로 빚어졌습니다. 수소는 빅뱅 직후에, 산소는 별이 핵융합으로 만든 뒤 죽으며 흩뿌렸어요. 둘은 영하 250도가 넘는 차가운 먼지 표면에서 얼음으로 맺혔고, 그 물은 소행성에 실려 지구로 ‘배달’됐습니다(물의 지문 D/H로 추적). 그러니 우리 몸은, 별의 잔해로 채워진 작은 바다인 셈입니다.

지금 컵에 담긴 물 한 모금. 이 물은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을까요? 놀랍게도 그 재료는 지구가 태어나기 한참 전, 머나먼 우주에서 빚어졌어요. 오늘은 물의 ‘출생의 비밀’을 따라, 빅뱅에서 당신의 컵까지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물의 두 재료는, 따로따로 태어났다

물은 수소와 산소로 되어 있죠. 그럼 이 둘은 우주 탄생 때 함께 생겼을까요?

아니에요. 우주가 막 탄생한 빅뱅 직후엔 가장 가벼운 수소와 헬륨, 그리고 극미량의 리튬만 만들어졌어요. 물의 한쪽 재료인 수소는 일찍 태어났지만 — 다른 쪽 재료인 산소는 그때 ‘아예’ 없었습니다. 그러니 빅뱅 직후엔 물이 존재할 수가 없었죠. 재료의 절반만 먼저 우주에 깔린 셈이에요.

물 한 모금이 만들어지기까지(타임라인)

산소는, 별이 만들어 냈다

그럼 산소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별이에요. 별은 중심에서 수소를 태워(핵융합) 점점 무거운 원소를 차례로 빚어 갑니다. 그 과정에서 마침내 산소가 등장하죠. 그리고 별이 수명을 다해 부풀거나 초신성으로 터질 때, 그 산소가 우주 공간(별과 별 사이)으로 흩뿌려집니다. 물의 나머지 재료가, 비로소 우주에 풀린 거예요.

“우리 컵 속 산소 원자는, 어느 별이 죽으며 남긴 유언입니다.”

물은 ‘불꽃’이 아니라 ‘서리’로 태어난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물이 되죠. 그런데 그 ‘만남’이 어디서 일어날까요? 흔히 ‘수소 + 산소 → 물’ 하면 폭발적 반응(연소)을 떠올리지만 — 우주의 물은 정반대 환경에서 태어나요. 별과 별 사이, 영하 250도가 넘는 칠흑 같은 추위 속, 차가운 먼지 알갱이 표면에서 원자들이 한 번에 하나씩, 수만 년에 걸쳐 조용히 달라붙어 얼음이 됩니다.[1]

지상의 물이 폭죽이라면, 우주의 물은 인내의 화학인 셈이죠. 그래서 물은 우주에서 가장 흔한 분자 중 하나예요.

그런데 — 얼마나 흔하냐면

물은 지구만의 보물이 아니에요. 우주 곳곳에 깔려 있죠. 얼마나 흔하냐면 — 2011년 천문학자들은 무려 120억 광년 떨어진 한 퀘이사(거대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삼키며 맹렬히 빛나는 은하 중심) 곁에서, 지구의 모든 바닷물을 합친 것의 약 140조 배(추정)에 이르는 물을 수증기 형태로 찾아냈어요. 우주에서 알려진 가장 크고 먼 ‘물 저수지’예요.[2]

더 놀라운 건 ‘시점’이에요. 그 빛은 120억 년을 날아온 것이니, 우리는 지금 우주가 태어난 지 겨우 16억 년쯤 된 시절의 모습을 보는 셈이에요. 물은 그 까마득한 옛날에, 이미 그 머나먼 곳에 있었던 거죠. (‘140조 배’는 관측에 기반한 추정 규모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는 뜻으로 받아 주세요.)

“물은 우주의 손님이 아니라, 우주의 토박이입니다.”

우주의 토박이 — 140조 배

물의 ‘지문’ — 중수소(D/H)

그렇다면 지금 지구의 바닷물은, 우주의 어디서 굴러온 걸까요? 단서가 있을까요?

있어요. 바로 물의 ‘지문’이에요. 보통 수소(H)에 중성자가 하나 더 붙은 무거운 형제를 중수소(D)라고 하는데, 추운 곳에서 만들어진 얼음일수록 이 D가 더 많이 섞입니다. 그래서 물에 든 D/H 비율을 재면,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지구 바닷물의 지문은 약 156ppm(백만 개 중 156개)이에요.[3]

이 지문을 우주의 후보들과 맞춰 보면 — 소행성(탄소질 운석)의 물은 지구와 거의 똑같고, 대부분의 혜성은 D/H가 지구의 2~3배로 높았어요. 지구를 닮은 혜성(하틀리2)도 있었지만,[4] 로제타 탐사선이 다가간 혜성 67P는 무려 3배에 이르렀죠.[5]

물의 지문 D/H 비교

그래서, 지구 바다는 ‘배달’되었다

지문을 종합하면, 지구 바닷물과 가장 잘 맞는 건 소행성(운석)이에요. 즉 ‘지구의 물은 소행성이 배달했다’는 게 현재 다수설이에요. 지구는 건조하게 태어나, 나중에 물을 받은 행성이니까요.

단 ‘유력’이지 ‘확정’은 아니에요. 67P처럼 지문이 안 맞는 혜성도, 반대로 지구를 닮은 혜성도 있어 ‘혜성도 일부 거들었을 수 있다’는 여지가 남아요. 최근엔 지구가 스스로 물을 일부 만들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67P의 측정값 자체가 다시 검토되기도 했죠. 그래서 정직한 답은 ‘소행성이 주도한 다중 기원, 논쟁은 진행 중’이에요.[6]

마치며 · 당신은, 작은 바다입니다

정리하면 이래요. 수소는 빅뱅이 주고, 산소는 별이 빚어 죽으며 흩뿌리고, 둘은 먼지 위에서 얼음으로 맺힌 뒤, 소행성에 실려 지구로 배달됐어요. 그 물이 바다가 되고, 비가 되고, 지금 당신의 몸 70%를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별의 잔해로 채워진 작은 바다인 셈이에요.

그런데 지구의 물이 정말 ‘바다’에만 있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우리가 못 보던 곳들을 뒤져 봅니다. 발밑 수백 km 암석 속, 그리고 태양에서 한참 떨어진 얼음 위성 속 — 거기에도 ‘바다’가 숨어 있거든요.

자주 묻는 질문 (FAQ)

Q. 물의 재료인 수소와 산소는 같이 생겼나요?

A. 아니에요. 수소는 빅뱅 직후에 생겼지만, 산소는 그때 없었어요. 산소는 한참 뒤 별이 핵융합으로 만든 뒤, 수명을 다해 터지며 우주에 흩뿌린 원소예요. 그래서 ‘우리 컵 속 산소는 어느 별의 유언’이라고 말하는 거죠.

Q. 지구의 바닷물은 어디서 왔나요?

A. 물의 ‘지문’인 중수소 비율(D/H)로 추적하면, 지구 바다(약 156ppm)와 가장 잘 맞는 건 소행성(탄소질 운석)이에요. ‘소행성이 주도해 배달했다’는 게 현재 다수설이지만, 혜성이 일부 거들었을 가능성 등 논쟁은 진행 중입니다.

Q. 물은 우주에서 드문가요?

A. 오히려 흔해요. 별과 별 사이 차가운 먼지 표면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져, 우주에서 가장 흔한 분자 중 하나입니다. 2011년엔 120억 광년 밖 퀘이사 곁에서 지구 바닷물의 약 140조 배(추정)에 이르는 물이 발견되기도 했어요.

결론 — 별의 잔해로 채워진 작은 바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빅뱅과 죽은 별, 그리고 소행성을 거쳐 온 우주의 토박이예요. 그 물이 지금 당신의 몸 70%를 채우고 있죠. 다음 편 「숨은 바다」에서는, 그 물이 지구의 ‘겉’만이 아니라 발밑 암석과 머나먼 얼음 위성에도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만나요.


▶ 함께 읽기
– [물의 경이 ④] 숨은 바다 — 지구가 감춘 물, 우주가 감춘 바다
– [물의 경이 ①] 물 분자의 마법 — 다섯 가지 기적
– [대멸종] 시리즈 — 지구 생명의 큰 사건들

참고 자료
– [1] Dulieu, F. et al. — Water formation on interstellar dust grains, Astronomy & Astrophysics 512 (2010)
– [2] NASA/JPL — Astronomers Find Largest, Most Distant Reservoir of Water (퀘이사 APM 08279+5255, 2011)
– [3] ESA Herschel — Deuterium-to-hydrogen ratio in the Solar System (지구 바닷물 D/H ≈ 156ppm)
– [4] Hartogh, P. et al. — Ocean-like water in the Jupiter-family comet 103P/Hartley 2, Nature (2011)
– [5] Altwegg, K. et al. — 67P/Churyumov-Gerasimenko, a Jupiter family comet with a high D/H ratio, Science (2015)
– [6] NASA/JPL — Rosetta Reignites Debate on Earth’s Oceans (지구 물 기원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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