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에서 전기까지, 그리고 AI
사진: Pexels
GaiaBeacon 「거대한 전환 — 연산의 시대로」
AI를 둘러싼 국가 경쟁은 ‘환경 문제’이기 전에 ‘생존 문제’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펼쳐 보면, 생존의 열쇠는 늘 ‘에너지’였습니다. 생산력의 시대(유기경제)는 아시아가 앞섰고, 산업의 시대는 석탄을 쥔 영국이, 군사의 시대는 석유를 쥔 미국이 가져갔습니다. 이제 힘의 원천은 ‘연산력(AI)’으로, 그 병목은 ‘전기’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환경을 잘 다루는 일은 경쟁에서 지는 길이 아니라, 어쩌면 이기는 길입니다.
AI 데이터센터 이야기를 하면 보통 두 갈래로 흐릅니다. 하나는 “전기와 물을 너무 많이 쓴다”는 환경 걱정, 다른 하나는 “그래도 안 지으면 경쟁에서 진다”는 생존 논리. 이 둘은 늘 부딪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시야를 5천 년으로 넓히면, 의외의 사실이 보입니다 — 인류 역사에서 ‘환경(에너지)을 다루는 능력’과 ‘패권’은 한 번도 따로 논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때, 아시아가 앞서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과 250년 전만 해도 세계 경제의 무게중심은 동쪽에 있었습니다.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의 추정에 따르면, 1820년 무렵 중국 한 나라가 세계 GDP의 약 33%를 차지했고, 1500년부터 1870년 무렵까지 세계 최대 경제였습니다.[1] 인도까지 더하면, 부의 큰 몫이 아시아에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에너지는 ‘유기경제’였습니다. 사람과 가축의 근육, 물레방아, 바람, 그리고 장작. 모두 그해 땅이 길러낸 만큼만 쓸 수 있는 힘이었죠. 생산의 천장이 토지와 인구에 묶여 있었기에, 더 많은 인구와 더 넓은 농토를 가진 쪽이 앞섰습니다. 아시아가 앞섰던 건 그 규칙에 가장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석탄이 갈라놓다 — ‘대분기’
변화는 갑작스러웠습니다. 경제사학자 케네스 포메란츠는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에서, 1750년 무렵까지만 해도 서유럽과 동아시아(양쯔강 하류)의 생활수준과 시장이 서로 비슷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1800년 전후로 영국이 갑자기 앞서 나가기 시작했죠.[2]
포메란츠가 꼽은 두 열쇠는 ‘석탄’과 ‘식민지’였습니다. 영국은 경제 중심지 가까운 곳에 석탄이 묻혀 있어 고갈되던 장작을 대신할 수 있었고, 신대륙에서 면화·설탕 같은 자원을 끌어왔습니다.[2] 석탄은 인류가 처음으로 ‘근육의 한계’를 넘어선 에너지였습니다. 증기기관이 사람과 가축을 대체하자, 생산력이 폭발했죠.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반전이 있습니다. 중국에도 석탄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탄광이 경제 중심에서 너무 멀었고, 여러 여건이 달라 산업으로 불붙지 못했습니다.[2] 같은 자원을 갖고도 한쪽은 시대를 갈아탔고, 한쪽은 놓쳤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이 여기 있습니다 — ‘자원을 가진 것’과 ‘제때 제대로 쓴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다만 대분기의 정확한 시점과 원인은 지금도 학계의 논쟁 주제입니다. 제도·과학·지리·우연이 함께 작용했다는 견해가 많고, 석탄은 그중 ‘강력한 한 요인’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석유의 세기 — 전쟁을 가른 ‘피’
19세기 내내 중국의 비중은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아편전쟁을 비롯한 격변 속에서, 세계의 중심은 완전히 서구로 넘어갔죠.[1] 그리고 20세기, 힘의 원천은 다시 한 번 옮겨갑니다 — ‘생산력’에서 ‘군사력’으로, 그리고 그 연료는 ‘석탄’에서 ‘석유’로.
석유는 1960년대에 석탄을 제치고 세계 1위 에너지가 되었습니다.[3] 석유는 단지 공장을 돌리는 연료가 아니라, 전차·항공기·함대를 움직이는 ‘군사력 그 자체’였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은, 어떤 의미에서 석유를 누가 쥐느냐의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20세기 패권은 두 기둥 위에 섰습니다. 중동 석유에 대한 영향력, 그리고 석유를 ‘달러’로 결제하게 만든 구조(이른바 페트로달러)입니다.[4] 1980년 미국은 걸프 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죠(카터 독트린).[4] 에너지를 쥔 자가 전쟁과 경제를 함께 쥐었던 것입니다. (석유가 달러로 거래된 이 구조는, 오늘날 AI 투자의 ‘달러 청구서’와도 이어집니다 — 이 이야기는 시리즈 뒷편에서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전기 — ‘연산의 시대’
이제 우리 시대입니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은 반도체·소프트웨어·인터넷으로 디지털 패권을 쥐었고, 21세기 들어 중국이 거세게 추격하며 새로운 헤게모니 경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쟁의 힘의 원천이 또 한 번 바뀌고 있습니다 — ‘정보’에서 ‘연산력(AI compute)’으로. 그리고 그 병목은 다시 ‘에너지’, 정확히는 ‘깨끗하고 대용량인 전기’입니다. AI를 훈련하고 돌리는 데이터센터가, 이 시대의 새로운 ‘유전’이 된 셈이죠.

석탄이 영국을, 석유가 미국을 끌어올렸듯, 전기를 가장 잘 다루는 나라가 AI 시대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잘 다룬다’는 건 단지 많이 쓴다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전기로 더 많은 연산을 뽑아내는 효율, 탄소를 덜 내는 청정 전력, 버리던 열을 되살리는 기술 — 이 모든 것이 곧 경쟁력입니다. 환경을 잘하는 일과 경쟁에서 이기는 일이,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자원이 아니라 ‘제때 쓴 자’ — 그렇다면 한국은
역사의 패턴은 분명합니다. 패권은 자원을 가장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그 시대의 에너지를 가장 제때, 가장 영리하게 쓴 자에게 갔습니다. 중국은 석탄을 갖고도 놓쳤고, 영국과 미국은 석탄과 석유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렇다면 전기의 시대, 한국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솔직히 규모(전력·자본)만으로는 미국·중국과 정면 경쟁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잘 쓰는 법’에서는 다릅니다. 효율적인 냉각, 청정 전력과의 연계, 폐열의 재활용, 정밀한 측정과 공시 — 한국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여기입니다. 이것은 동시에 지구 환경을 위한 길이기도 하죠. 이 구체적인 해법들은 이 시리즈의 뒷부분에서 하나씩 풀어갑니다.
한 가지만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 다만 운율을 가질 뿐입니다. “중국이 반드시 이긴다”거나 “미국이 진다”는 식의 단정은 이 글의 몫이 아닙니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다음 시대를 가른다는 것 — 그것만은 역사가 거듭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정말 옛날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나요?
A. 경제사학자 매디슨의 추정으로는 그렇습니다. 1820년 무렵 중국이 세계 GDP의 약 33%를 차지했고, 1500~1870년경 세계 최대 경제였던 것으로 봅니다. 다만 이는 후대의 ‘재구성 추정치’라 기관·방법에 따라 숫자가 조금씩 다릅니다.
Q. AI 경쟁을 왜 ‘에너지 전쟁’이라고 하나요?
A. 역사에서 힘의 원천이 바뀔 때마다 그 바닥엔 늘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산업의 시대는 석탄, 군사의 시대는 석유가 갈랐습니다. AI(연산력)의 시대에 그 자리를 전기가 차지했고, AI 데이터센터의 최대 병목이 바로 ‘대용량 청정 전력’입니다.
Q. 그럼 환경을 챙기면 AI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 아닌가요?
A. 오히려 반대일 수 있습니다. 효율(같은 전기로 더 많은 연산), 청정·안정 전력(에너지 안보), 폐열 재활용(비용 절감)은 모두 환경에도 좋고 경쟁력에도 좋습니다. ‘환경 대 생존’이 아니라 ‘환경이 곧 경쟁력’이라는 관점이 이 시리즈의 핵심입니다.
결론 — 거대한 전환의 입구에서
석탄이 세상을 한 번 갈아엎었고, 석유가 다시 한 번 갈아엎었습니다. 그때마다 그 에너지를 제때 쥔 나라가 다음 100년을 가져갔죠. 지금 우리는 세 번째 전환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 전기와 연산의 시대로.
이 시리즈 「거대한 전환」은 그래서, AI를 ‘환경의 적’으로도 ‘무조건의 선’으로도 그리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가장 깨끗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전기를 다루는 나라가 다음 시대를 가질 수 있다면 —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다음 편부터, 그 거대한 전환의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연산력이 곧 국력’이 된 오늘의 풍경부터입니다.
함께 읽기
- [거대한 전환 ⑤] 컴퓨트가 곧 국력 — 칩·주권 AI·안보
- [거대한 전환 ①] AI가 이사 오는 날 — 데이터센터란 무엇인가
- [기후 이야기] 시리즈 — 에너지 전환과 지구
출처
- [1] Angus Maddison, *Chinese Economic Performance in the Long Run* / Maddison Project Database — 1820년 중국 세계 GDP 약 33%(PPP 추정), 1500~1870 세계 최대 경제
- [2] Kenneth Pomeranz, *The Great Divergence: China, Europe, and the Making of the Modern World Economy* (2000) — 1750 대등·1800 분기, 석탄+식민지, 중국의 석탄 미활용
- [3] 에너지 전환사(석유의 1960년대 석탄 추월·군사력의 핵심 자원) — 에너지·패권 관련 학술 자료
- [4] 미국 패권의 두 기둥(중동 석유·페트로달러), 카터 독트린(1980) — 냉전·석유 지정학 학술 자료


답글 남기기